타인의 고통을 줄이려는 삶

입력 2025-06-06 03:06

저는 손봉호 교수님을 1973년 3월 초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 사무실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마치고 외대 교수로 오셨을 때였습니다. 오랜 세월 선생님을 뵈면서 제가 본 선생님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해 보라면 서슴지 않고 ‘일관성’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말씀이나 글로 쓰신 대로 살고자 애쓰시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렇다고 늘 같은 주장만 하신 건 아닙니다. 젊을 때는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람과 사회가 바뀔 가능성이 없음에도 선지자가 했던 것처럼 늘 외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연륜이 쌓이면서는 ‘도덕적 선구자론’ ‘이기적 합리주의’ ‘소극적 공리주의’ ‘피해자 중심 윤리’를 펼쳤습니다. 회고록 부록에 선생님의 사상 핵심이 요약돼 있습니다.

손봉호 선생님은 대학과 교회와 사회, 이 세 영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자이자 학자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박사 논문을 신병훈련소에서 읽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과 이마누엘 칸트 철학의 길로 제가 들어서도록 도와준 책입니다. 명료함과 넓이와 깊이를 다 같이 갖춘 책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이나 책의 특징은 심오함보다 언제나 명료함의 추구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교회 설교자와 시민 운동가로서도 시간과 열정, 재산을 쏟아부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뿐 아니라 환경단체와 사회복지단체 등 수없이 많은 단체를 설립하거나 참여하며 평생 애를 썼습니다. 대학과 교회와 사회, 이 세 영역에서 짊어진 그분 삶의 무게가 책 표지로 사용한 김원숙 화백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림엔 세 봉우리의 산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사람의 형상이 담겼습니다.

회고록에 두 번 인용된 구절이 있습니다. “서로의 삶을 좀 덜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이 쓴 ‘미들마치’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삶의 의미이고 예수님도 원하는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고록 전체에서 선생님은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만큼 귀하고 의미 있는 삶은 없다고 말합니다. 청년 시절 겪은 부정부패의 경험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어릴 때 받은 사랑의 경험이 이런 삶을 사는 데 크게 영향을 줬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강영안 한동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