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출시된 전용 전기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차는 기아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V3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누적 판매량 약 8453대를 기록했다. EV3 구입을 고민하는 소비자가 가장 많이 저울질하는 전기차 중 하나가 볼보 EX30이다. 두 차량을 비교 시승했다.
EX30을 지난달 23일 먼저 탔다. 차키에 버튼이 하나도 없었다. 차키를 들고 차량 근처로 가면 자동으로 문의 잠금이 해제된다. 실내에도 물리버튼을 최소화했다. 심지어 시동 버튼마저 없다. 브레이크를 밟고 변속기어를 ‘D’(드라이브)로 옮기니 차가 움직였다. 창문을 열려고 운전석 문 쪽을 살펴봤는데, 여기에도 아무것도 없다. 차량 구석구석을 살피다 중앙 팔걸이 쪽에서 찾았다.
거의 모든 기능을 중앙 세로형 디스플레이에 넣었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면서 요즘 대부분 신차는 미래차 느낌을 내기 위해 물리버튼을 줄이는 추세다. 천장 전체가 대부분 유리로 덮여 있어 개방감이 좋았다. 사이드미러엔 프레임이 없다. 이렇게 하면 공기의 저항을 줄여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건 디자인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EX30의 승부수는 디자인이 아니다. 물리버튼을 없앤 대부분의 신차는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디스플레이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 불편할 때가 많다. EX30의 디스플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변속 모드, 주행가능 거리, 배터리 상태, 속도 등 기본적인 정보를 디스플레이 위쪽에 표시하고 중앙엔 티맵 내비게이션이 큼지막하게 자리한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로 안내해 줘”라고 말하니 티맵이 목적지를 안내했다. 그동안 수입차 내비게이션은 한국 지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 최대 단점으로 꼽혀왔지만, EX30은 이런 불편을 해소했다. 인공지능(AI) 비서 누구(NUGU), 음악스트리밍서비스 플로(FLO) 등을 탑재했다. 대시보드 전체가 하만카돈 스피커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깔끔한 공간에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한 건 더 이상 자동차가 이동을 위한 수단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운전대 상단에 운전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달려 있다. 주의 산만, 졸음운전 등 조짐이 보이면 경고음을 낸다. ‘안전의 볼보’ 답다. 문 열림 경보, 도로 이탈 완화 장치, 경사로 감속 주행 장치, 사각지대 경고 및 조향 어시스트 등을 기본 제공한다. 시동 버튼이 없으니 주행을 마친 뒤에도 그냥 내리면 된다. 운전자가 차키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진다.
EX30과 같은 차급의 순수 전기차 EV3를 마주한 건 지난 2일이다. 작고 아담한 크기다. 전장 4300㎜, 전폭 1850㎜, 전고 1560㎜의 콤팩트한 몸집이다. 허나 각진 라인을 강조해 다부진 느낌을 준다. 문을 열고 운전석 안에 들어가자 실내 공간이 생각보다 넓었다. 같은 평수여도 최신 아파트의 공간 활용도가 높은 것처럼 이 차도 좁지 않았다. 트렁크는 460ℓ 규모다. 뒷좌석을 접으면 어지간한 1인 소파를 실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 25ℓ 프론트 트렁크도 유용하게 쓸 만하다. 천연가죽 시트의 촉감이 부드러웠다. 대시보드 일부를 패브릭으로 꾸몄다. 이런 인테리어가 안락하고 푸근한 느낌을 줬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콘솔박스가 카페에 있는 대리석 테이블을 닮았다. 120㎜까지 확장할 수 있다. 잠시 정차했을 때 식탁으로 사용할 만하다.
12.3인치 클러스터, 5인치 공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매끄럽게 연결돼 있다. 내비게이션, 멀티미디어, 차량 설정 기능이 이 안에 들어가 있다.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뗐다. 물 위를 이동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전진했다. 가속 페달을 밟으니 힘 있게 뛰쳐나갔다. 서울 후암동의 한 골목에 들어섰다. 차량을 유턴해서 돌릴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을 15분 정도 주행했지만 작은 차체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운전대를 돌리면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바퀴가 섰다.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처럼 작지만 민첩했다. ‘아이 페달 3.0’ 기능을 적용했다. 가속 페달 조작만으로 가속·감속·정차가 가능하다. 동급 최대 수준의 81.4㎾h 4세대 배터리를 탑재했다. EV3 롱레인지 모델은 17인치 휠 기준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501㎞(산업부 인증 기준)다. 출퇴근용이나 도심 주행으로 아쉬움이 없는 수준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