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투표율 79.4%

입력 2025-06-05 00:40

호주는 세계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유권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 부과나 심하면 형사 처벌까지 가능한 의무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어서다. 1924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투표율은 줄곧 90%를 상회한다. 이처럼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투표율은 70% 정도에 머문다. 정치 무관심도 한 원인이지만, 투표 절차 자체가 어렵고 불편한 제도적 장벽도 있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은 자동 등록제가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가 직접 등록하지 않으면 투표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은 주별로 등록 마감일이 다르고 등록 과정도 복잡해 저소득층과 이주민 등에게는 참여 장벽이 크다. 일부 국가는 투표일이 평일이거나, 우편·사전투표 제도가 미비해 현실적으로 투표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전투표제, 자동 유권자 등록, 선거일 휴무 등 투표 친화적 제도를 두루 갖추고 있어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편이다.

특히 이번 제21대 대통령선거 투표율은 79.4%로 1997년 15대 대선(80.7%)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유권자 10명 중 8명이 투표장을 찾은 셈이니 투표하러 나올 사람은 거의 다 나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국 17개 시도 모두 지난 대선보다 투표율이 올랐다. 민주당 텃밭인 광주가 83.9%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고, ‘보수의 심장’ 대구 역시 직선제 첫해인 1987년 이후 처음으로 80%를 넘었다.

높은 투표율의 배경에는 사전투표 등 제도적 요인도 있었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 사태 이후 치러진 선거였다는 특수성이 결정적이었다. 국민적 관심과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는 단순한 정치 참여가 아니라 절박한 주권 행사로 작동했다. 더 나은 정치를 향한 의지는 투표로 발현됐고, 민주주의 회복의 출발선이 됐다. 막판 진영 결집이 이뤄진 영향도 있다. 79.4%라는 숫자는 우리 국민이 스스로를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