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들려주는 요즘의 일본

입력 2025-06-06 00:05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은 익숙한 나라다.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기에 ‘침략국’ 일본의 역사는 꿰고 있다. 주위를 보면 일본을 두세 번 갔다 온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일본의 진면목까지는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은 한국과 일본을 모두 잘 아는 친한 친구가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 일본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을 준다. 제목처럼 ‘지극히 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일본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고치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저자는 1994년 처음 가족 여행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인의 친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저자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받으며 ‘다이내믹 코리아’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영화의 매력에 빠졌고, 결국 신문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를 공부하며 석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그의 한국 생활은 10년, 인생의 4분의 1을 한국에서 지냈다. 누구보다도 한국을 잘 아는 일본인이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니 비슷할 것으로 생각해서 오해가 더 많은 면도 있다”면서 “그 작은 오해가 양국 사이에 큰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고, 덤으로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이면도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하면 ‘하나의 나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중앙집권 체제가 구축된 것은 메이지 유신 때로, 200년이 채 안 됐다. 게다가 길게 늘어진 4개의 큰 섬으로 이뤄져 국내 이동도 쉽지 않다. 그만큼 지방색이 강하다. 특히 한국의 서울만큼 도쿄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저자가 고치의 중학교 동창 결혼식에서 한 친구에게 ‘아사히 신문’에서 일한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들어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다 아는 신문사지만 일본의 지방에서는 “들어본 적은 있는” 신문사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괜찮은’ 대학은 서울에 몰려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도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교토대가 있고, 다른 지방 국립대의 수준도 높다. 실제 2024년까지 일본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 25명 가운데, 학사 기준 출신대학을 보면 도쿄대가 9명, 교토대가 8명이고 그 외의 수상자들은 대부분 지방 국립대 출신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하는 원인의 하나가 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처럼 대학이 분산돼 있는 것이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일본 사람 하면 ‘하나의 이미지’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일본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가 따로 있다고 여긴다. 사실 ‘다테마에’는 교토 사람의 특징이다. 교토 사람들이 집에 놀러 온 손님한테 “부부즈케(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 먹는 음식) 먹을래요”라고 하면 ‘슬슬 집에 가라’는 의미라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또 교토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보고 “기력이 넘치네요”라고 말한다면 조용히 해달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지역마다 일본인의 성향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면 교토 사람들이 완곡어법을 주로 사용한다면 오사카 사람들은 직설적이다. 같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면, 오사카 사람들은 통화가 끝나자마자 누구 전화인지 반드시 물어본다고 한다. 교토나 도쿄 사람 같으면 궁금하다고 직접 묻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천황’을 ‘일왕’이라고 낮춰 부르며 일본 사람들 사이의 ‘천황의 존재감’을 무시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예로 든다. 당시 한국에서는 독도에만 관심을 뒀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독도 방문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그보다 이 전 대통령이 독도 방문 후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이 국민감정을 건드린 것이라고 한다. 당시 ‘온화한 평화주의자’로 인식됐던 아키히토 천황을 왜 건드리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천황이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면서 “한일 정치권에서 양국 간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차치하고 양국 관계를 증진하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 대한 ‘뼈때리는’ 지적도 곳곳에 나온다. 한일 양국 택시 기사의 태도를 비교, 지적한 것은 꽤 인상적이다. 한국에 놀러 온 저자의 친구들은 택시를 타보고는 종종 기사들의 거친 운전과 태도에 불만을 토로한다. 거의 모든 물가가 한국이 일본보다 비싸지고 있지만 택시비만큼은 일본이 비싸다. 그래도 그만큼 서비스도 좋다. 저자는 이유를 자부심의 차이에서 찾는다. 그는 “한국에서 택시 기사와 말을 나누다 보면 자신이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데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일시적으로 하고 있다는 식의 말을 듣는다”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일하는 사람도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한일 관계는 그동안 냉온탕을 오갔다. 특히 한국에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지만 저자는 장기적으로 낙관적이다. 정치적 차원과 상관없이 서로의 문화를 즐기는 젊은 층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민 차원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많고 정치와 외교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시간이 지나서 지금 젊은 층이 사회의 중심에서 활약할 시기가 오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세·줄·평 ★ ★ ★
·친한 일본인 친구가 들려주는 것 같은 일본의 속살
·하나의 일본이 아닌 작고 다양한 일본
·이방인의 눈으로 한 발 떨어져서 보는 객관적인 한국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