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따뜻했던 ‘문학의 밤’… 물려주고 싶은 교회 추억

입력 2025-06-07 03:01
독자들이 보내온 그 시절 사진 속에 따스한 교회 추억이 가득하다. 여름성경학교, 겨울 수련회, 문학의 밤 어린이공연, 찬양대회, 성탄 전야제, 주일학교(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 독자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강소연

한국 사회가 극단적 갈등의 국면을 걷는 동안 교회가 보인 모습에 실망한 이들이 많다. 사랑과 화합, 공의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없지 않지만, 거리에서 마이크 잡고 큰 목소리 내는 일부와 교회 안에서의 갈등이 더 크게 주목받았다. 온라인에선 교회를 향한 냉소와 조롱이 판치고 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로선 처음부터 부정적 이미지가 덧칠된 교회를 경험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그러나 교회가 원래 이런 곳은 아니었다. 때론 가정보다 더 따뜻하고 매일 가고 싶었던 곳, 예배만 드리는 공간을 넘어 하나님을 뜨겁게 알아가는 치열한 신앙 훈련터이자 공동체를 배우는 공간이었던 교회를 기억하는 우리가 있다. 조기 대선을 끝내고 다시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할 지금, 국민일보는 한국교회 부모 성도 8명에게 ‘자녀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교회 추억’을 물었다. ‘생각만으로 웃음 난다’는 그 기억들엔 ‘함께’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달라진 시대, 교회가 이어가야 할 모습의 실마리도 여기서부터 찾아보면 어떨까.

학생 주인공 ‘문학의 밤’

개그맨 이정규(39) 집사를 포함해 인터뷰에 응한 여러 성도는 학생 주도로 열린 ‘문학(문화)의 밤’을 가장 기억나는 추억으로 꼽았다. 교회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교제와 공동체가 주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집사는 “중고등부 때 연말이면 학교 끝나고 매일 교회에 와서 형 누나 친구 동생들하고 모여 ‘찬양의 밤’ 무대를 준비했다”며 “우리가 기특했는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은 간식을 만들어 주시거나 사주셨다”고 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성극을 직접 준비한 일은 자신감의 자양분이 됐다. 이 집사는 “연기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제가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 지도로 극을 구성하고 연기를 했던 경험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며 “달란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때지만 ‘주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은 친구들을 행사에 초대하며 교회 문화를 자랑하는 기회도 됐다. 이 집사는 “찬양의 밤에 놀러 오라는 식으로 고3 때 7명이나 전도했었다”고 웃었다.

25년째 신앙생활을 해온 이나리(32) 집사도 매년 겨울방학마다 열린 ‘빛의 소리의 밤’ 공연을 가장 기억에 남는 교회 추억으로 떠올렸다. 이 집사는 “기획부터 연습, 진행까지 모두 학생들이 주도했다”며 “방학 내내 준비에 몰두하면서 자연스럽게 또래나 선후배들과 허물없이 친해졌다”고 했다.

이 집사는 특히 고교 2학년 때 공연 기획을 맡아 후배 무대를 지도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는 “후배들이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을 때 뿌듯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한 가지 목표를 두고 함께 준비하고 부딪히며 지냈던 공동체 경험이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종일 온 세대가 함께하던 예배당

주일 교회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거나 온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활동한 기억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교회 추억이다. 회사원 박정규(41)씨는 “온종일 교회에서 보내며 부모님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며 “자모실 개념이 거의 없던 때라 집회나 기도회에도 항상 함께였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바로 옆 부모의 신앙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박씨는 “눈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부르짖으시던 그때 어머니 모습은 제 신앙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부활절, 성탄절 등 절기 행사에 온 세대가 참여한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박씨는 “유치부 때 교회 성극에서 아하수에로 왕을 맡아 에스더를 택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선생님들과 밤늦게까지 연습하며 무대에 섰던 경험이 마음에 더 깊이 남았다”고 했다. 준비한 무대가 때론 어설퍼도 환호를 보내며 함께 웃으며 ‘사랑의 공동체’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경기도 안양 박달초 합창단 교사인 채윤미(43)씨는 시골교회를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 성탄절 무렵 어른들과 돌았던 새벽송을 추억했다. 채씨는 “성탄절 성극을 마치고 교회엔 어른들이 계셨고, 그 근처 우리 집에 또래들이 모였다. 이불 하나에 다리를 집어넣고 앉아서 힘든 가정사부터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까지 스스럼없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밤을 보내고 어른들과 새벽송을 돌았다. 시골길이 어둡고 추웠지만 함께였기에 환하고 따뜻했던 추억”이라고 덧붙였다.

전북 전주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유아름(41)집사는 유치원부터 학창시절 내내 이어진 신앙 훈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유 집사는 “50~100일 정도 지속하는 특별 새벽 집회가 거의 일 년 내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집회에 늦을까 봐 밤에 옷을 입고 잘 만큼 열정적이었다”고 했다. “아버지 오토바이에 저와 남동생이 같이 타고 교회에 가던 장면, 벽지에 출석 스티커를 붙이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고도 덧붙였다.

10대 두 아이를 키우는 안혜선(47) 집사는 “대학 시절 첫 해외여행이자 해외 선교를 가기 전 매일 교회에 모여 인형극 찬양 무용을 준비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기억난다”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마음을 허락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지금도 명확히 느껴진다”고 했다.

놀이터 같던 교회… 달란트 시장 추억

영어 강사인 김애숙(46) 집사는 어린 시절 수련회에서의 작은 기억 조각이 가슴에 깊이 남았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전도사로 있던 제주도 중문의 작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의 추억이다. 외할아버지가 교회 종을 치면 그 소리에 성도들이 삼삼오오 예배당에 왔던 장면이 또렷하다.

“주일학교 예배에 청년들이 수련회를 열어주었고, 청년들이 저를 포함한 아이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는 세족식을 했어요. 낯설었기에 ‘간지러워요’라고 말했는데, 한 청년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단다. 선생님도 그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네 발을 씻겨주는 거야’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씀이 너무 생생하고,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여전히 뭉클해요.”

김 집사는 주일학교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예수님의 섬김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란트 시장은 누구에게나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이다. 박씨는 “전도하면 5개, 말씀 암송하면 3개, 찬양과 율동을 잘하면 2개씩 달란트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며 “달란트 시장이 열리는 날 믿지 않는 친구를 초대하고, 선생님들이 직접 떡볶이를 해주시던 모습, 달란트가 부족하면 교회 형이나 누나들이 빌려주던 기억도 그립다”고 했다. “그런 즐거움 속에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회사원인 이재광(48) 집사에게 교회는 놀이터였다. 하교 후 동네 친구들과 교회로 뛰어가 숨바꼭질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얼음땡도 하면서 웃고 떠들었다. 친구 따라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간식으로 준 떡볶이도 꿀맛이었다.

이 집사는 “교회학교에서 찬양을 부르며 말씀을 들을 때 기쁘고 따뜻했다”며 “특히 ‘실로암’을 기쁘게 부르면서도 많이 울었던 뭉클했던 어린 마음이 선명하다”고 했다. 찬양 부르길 좋아했던 그는 청년부 시절 전국 규모의 찬양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2003년 고백이라는 자작곡으로 한 가스펠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며 “이때 인기상을 받은 청년이 가수 차지연씨였다”고 했다. 축제처럼 즐긴 여름성경학교도 그 시절 추억이다. 이 집사는 “전지에 찬양 가사를 적고 손으로 꾸미고, 친구들과 짝을 지어 말씀을 외우던 그 모든 순간이 신앙의 씨앗이 됐다”며 “예배 후 선생님들이 간식으로 준비해 준 미숫가루와 수박 한 조각엔 하나님의 사랑이 배어 있었다”고 했다.

신은정 김수연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