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충격적인 대형 재난이 신문과 방송을 장식했다. 사진과 영상은 블록버스터급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 비르히 빙하가 부분적으로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해 진흙과 바위가 산을 미끄러져 내려와 산자락 아래 있는 발레주 블라텐 마을을 통째로 삼킨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고에도 인명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블라텐 마을 주민은 300여명으로, 사전 대피명령에 따라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마을을 떠난 상태였다. 다만 64세 남성 한 명이 실종돼 수색 중이라고 한다. 순식간에 마을 90%가 매몰되면서 자칫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을 뻔했지만 피해가 최소화됐던 것은 선진국다운 철저한 대비 시스템 덕분이었다.
스위스는 기후변화로 빙하 붕괴와 산사태 위험이 커지자 1990년대부터 사전 모니터링과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근 비르히 빙하의 발원인 클라이네 네스호른 산간에서 낙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약 900만t의 암석이 빙하 위에 쌓여 빙하의 이동속도가 하루 10m에 달하는 급가속 현상이 관측됐다. 지질학자들은 이를 빙하 붕괴의 전조로 판단했고, 당국은 사고 발생 열흘 전 산간마을 주민들과 가축의 대피를 결정했다. 또 레이더 이미지를 통해 암반의 움직임과 빙하의 이동속도를 추적하면서 붕괴로 인한 산사태 발생 등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텐은 로첸탈 계곡 최상단 해발 1540m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전통 알프스 목조 주택과 자연이 어우러진 힐링 장소로, 유럽인에게 인기 있는 곳이다. 아직 한국에는 덜 알려져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거의 없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도 큰 재난이 발생했다. 영남지역 초대형 ‘괴물 산불’이 대표적이다. 3월 22일부터 일주일간 계속된 경북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5개 시·군의 산불 지역 피해 면적은 서울 전체의 1.5배인 9만㏊에 달했다. 사상자는 80명을 넘었다. 당국은 고온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급속한 산불 확산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소나무 중심의 식수 정책과 낮은 임도율도 지적됐다. 산불 확산 예측 실패도 도마에 올랐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피해 주민에게는 구호비, 생계비, 생활필수품 등이 속속 지원되고 복구와 재건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국내 여행을 장려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숙박 할인권 40만장을 배포하는 ‘숙박세일페스타’를 추진하며 산불 피해지역 등에 특별재난지역편 할인권도 마련했다. 산불이 진화되자 이번에는 대도시에서 걱정거리가 늘어났다. 서울, 부산, 인천 등에서 싱크홀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불안에 떨게 했다. 과거 싱크홀 사고 이후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만들었지만 ‘부동산 가격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하지 않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올여름이 평년보다 더 덥고, 초여름인 6월에 비도 많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기상청의 예보다.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하천과 제방이 범람하고, 지반이 무너져 내려 도로가 유실되는 등 재난 사태가 과거에 이어 또 벌어질지 모른다. 속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일을 당하고 나서 뒤늦게 손을 쓴다’는 부정적인 뜻이 있다. 하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고 더 이상 소를 잃지 않기만을 막연히 바라고만 있어야 하는가.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힘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무서운 존재다. 비록 한번 당했지만 대비하면 위협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지나간 재난을 반면교사 삼아 철저한 예방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