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정년 연장, 숙의로 풀자

입력 2025-06-05 00:32

이재명정부가 맞닥뜨릴 첫 사회 갈등은 정년 연장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으로 만 60세인 법정 정년을 손볼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여러 경제주체의 생각이 크게 달라 합의까지 쉽지 않은 길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은 세 가지다. 첫째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정년 65세 연장 법제화다. 연금 개시 나이와 정년의 불일치로 생기는 소득 공백을 정년 연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제시한 시간표는 촉박하다. ‘2025년 내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퇴직 후 재고용’은 고용 불안과 임금 하락이 우려된다며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이 제안한 ‘계속고용 의무제’다. 정년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대신 더 일하고 싶은 고령 근무자를 기업이 의무적으로 재고용하게 하는 방식이다. 다만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과 직무 전환을 할 수 있다. 시간표는 단계적이다. 2028년부터 계속고용 의무 나이를 올려 2033년 65세가 되게 한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한국은행 고용연구팀과 김대일 서울대 교수의 안으로, 먼저 자율적으로 재고용 제도의 확산을 유도한 뒤 점진적으로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자는 제안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안과 비슷하지만 시간표는 빠져 있다. 노총 안과도 차이가 크다. 이들은 퇴직 후 재고용을 단기간 내 법적으로 의무화하면 임금체계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어려워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세 가지 대안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현재까지 택한 것은 양대 노총의 안이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노총 요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대선 기간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캠프의 공동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한 것도 향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게 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연내 정년 연장 법제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다른 정치 사안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반대한다. 재계가 정년 연장 법제화에 반대하는 것도 고려할 요소지만 2030세대가 충분히 동의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여야가 지난 3월 통과시킨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에 대해 “젊은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년 연장에 대해서도 고용 조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며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정년 연장을 통한 고령층 고용이 청년 고용을 줄인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나아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에 관한 한은 보고서는 2016년 박근혜정부의 법정 정년 60세 상향이 그 이후 출산율과 혼인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층 고용 상황 악화가 2016~2023년 역대 최저 수준의 출산·혼인율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65세 정년 연장은 생각보다 더 큰 파급력을 낼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인구를 더 빠르게 감소시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재계와 만난 자리에서 말했듯이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충분한 대화’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공론화위원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를 놓고 해법을 모색한 그 방식이다. 당시 시민참여단 417명은 한 달간의 숙의와 토론을 거쳐 원전 건설을 재개하되 급격한 탈원전은 막아야 한다는 절묘한 결론을 도출했다.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봤다는 평가가 쏟아졌지만 다시 시도된 적은 없다. 공론화위를 통한 합의 모색은 이 대통령이 대선 기간 강조한 통합의 정치 실현과도 맞닿아 있다. 힘으로 독주할 것이라는 반대 집단의 인식도 불식시킬 수 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