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작은 그림 하나가 생명을 지킨다

입력 2025-06-05 00:34

자전거 도난이 골칫거리인 대학이 있었다. 도난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대학 연구팀은 자전거 보관소에 사람 눈 이미지가 그려진 표지를 붙이는 간단한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도난이 무려 60%나 감소한 것이다. 실제 사람이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눈 그림 하나를 그려 넣었는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행동을 바꾼 것이다. 영국 뉴캐슬대학에서 있었던 이 실험은 직관적 그림 하나가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 즉 시각화의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각화가 생명을 지켜주는 곳이 있다. 바로 산업현장이다. 2025년 현재 우리 산업현장에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고 있고, 취업자는 1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산업현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으나, 이들이 늘어나면서 안타까운 숫자도 커졌다. 바로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2022년 9.7%, 2023년 10.5%를 기록했고 최근 통계인 2024년 6월 기준으로도 11.8%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언어다. 한순간의 실수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현장에서 소통은 곧 안전이다. 안전 수칙, 경고 내용이 필요할 때도 즉시 전달돼야 한다. 하지만 외국인이 언어를 익히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결국 언어의 차이는 안전을 가로막는 벽으로 놓여 있다.

벽을 허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각화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 바로 안전보건표지의 활용이다. 선명한 이미지와 간결한 기호로 메시지를 전하는 표지는 언어를 초월한다. 빨간 원 안의 그림은 “하지마!”라고 외치고, 기계 옆의 날카로운 칼날 그림은 “위험!”이라고 경고한다. 직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한눈에 이해가 된다. 작은 표지가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방법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한 행동을 유도하고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안전보건표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를 둔 경우 모국어로 제작해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고 약속이다. 10여년 전 1000만명이 넘게 본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1960년대 독일의 산업현장에서 더 나은 삶의 꿈을 안고 일하던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산업재해를 입는 장면은 우리 부모 세대를 떠올리게 하면서 많은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60여년이 지난 오늘 독일 산업현장의 한국인 근로자는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로 바뀌었다. 시간과 장소는 다르지만 그때의 한국인 근로자와 지금의 외국인 근로자는 같다. 꿈과 희망을 품고 함께 일하고 땀 흘리는, 우리 사회를 같이 살아가는 동반자다. 그들이 안전해야 우리도 안전하다.

이창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홍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