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경제과제 1순위는 추경·통상… ‘급한 불’부터 꺼야”

입력 2025-06-04 00:16
게티이미지뱅크

4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내수 부진과 미국발(發) 관세 파고라는 이중 악재 속에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국민일보가 경제 전문가 5인에게 최우선 경제과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들은 ‘추경 단행’과 ‘통상 협상력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며 당장의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경제 상황이 나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빠르게 추경을 단행해야 한다”며 “추경이 소비나 투자로 연결될 수 있도록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미국 관세로 존폐 기로에 선 기업 등 꼭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리 인하와 2차 추경이 내수회복의 정책대안이 될 수 있다”며 “특히 금리 인하 흐름에 맞춰 추경을 병행해야 내수 회복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물론 금리 인하는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같은 다른 정책으로 관리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차 추경은 추석쯤 집행하는 것을 전제로 지금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세수 재추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재정 여건이 상당히 어려울 가능성이 큰 만큼, 현재 재정 수치를 바탕으로 재원 조달 가능성과 국채 발행 한도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과 함께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투자와 연구개발(R&D) 지원을 병행해 단기 경기부양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 예정된 ‘줄라이 패키지’ 협상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도 제시됐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비관세 장벽 분야에서 어느 정도 한국정부의 양보가 필요하다”며 “한국도 산업 보호를 위해 여러 장벽을 두고 있는데 특히 농산물 분야는 외국 입장에서 불합리하게 보일 수 있으며, 자유무역 관점에서 점진적 완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자가 많으므로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지금은 성급히 협상을 마무리하기보다 미국의 관세 요구 목적을 파악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관세 정책은 물가상승 등 미국 실물경제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부담이 가해지는 만큼 미국의 협상 입지는 점차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임기 내 추진 과제로 신산업 육성과 규제개혁을 통한 잠재성장률 제고를 꼽았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AI)과 같은 신산업을 육성해 국가 경쟁력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성장률이 0.8%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산업 육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규제개혁청’처럼 독립된 조직이나 현재 운영 중인 규제개혁위원회를 필두로 지금보다 한층 더 체계적인 규제 개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무조건 규제를 완화해주기보다는 기초 연구개발(R&D), 초기 대형투자가 필요한 부분을 국가가 먼저 판을 깔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정부 보조금을 바탕으로 중국 제품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시장에 진입하면서 가격 경쟁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 같은 왜곡된 경쟁 구조에 대응하려면 한국도 주요 산업을 선별해 본예산 중심의 전략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과제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양 교수는 “한국 경제의 핵심 문제는 노동과 부동산 두 시장의 구조적 왜곡에 있다. 노동 시장은 교육·노동생산성·산업구조의 왜곡을, 부동산 시장은 금융 불안과 지역 격차를 초래하고 있다”며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며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방식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가가 돌봄 서비스를 대폭 확대해 미활용 인력인 여성과 고령층을 양질의 일자리에 진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김윤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