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빠르게 성장하고 잇는 글로벌 냉난방공조(HVAC) 시장을 다른 방식으로 공략하고 있다. 삼성은 유럽 1위 공조 업체를 인수해 공급망과 실적을 손에 넣었고, LG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활용해 신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업력 100년의 유럽 1위 공조 업체 인수라는 지름길을 통해 대규모 시설용 중앙공조 시장에 본격 진입한다. 지난달 15억 유로(2조4000억원)를 들여 인수 계약을 체결한 플랙트는 65개국에 중앙 공조 제품 및 설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대형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공항·터미널·병원 등에 공급 실적을 다수 보유했다. 플랙트는 액체냉각 방식 중 하나인 냉각수분매장치(CDU) 기술 역시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수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시장 대응에도 효과적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LG전자는 제조업과 도시 개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동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신흥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직 뚜렸한 강자가 없는 시장에서 전 세계 1위 판매량을 차지하는 LG 가전의 높은 인지도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19일에는 아시아 7개국의 HVAC 컨설턴트(시스템 설계·선정 전문가)들을 국내로 초청해 LG전자의 시스템 에어컨과 칠러 기술 등을 소개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다이킨, 미쓰비시일렉트릭 등을 제치고 싱가포르의 대형 물류센터에 HVAC를 공급했다.
LG전자는 유럽·미국 등 기존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는 시장에서는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지에서 연구·개발(R&D)부터 판매, 유지보수까지 수행하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유럽에 에어솔루션연구소를 추가로 설립했다.
대형 공장과 시설에 온도·습도·공기질 시스템을 설치·운영하는 공조 업체들의 업력과 브랜드는 그 자체로 귀중한 자산이다. 현지 건설사와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데다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공급 실적을 중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조업계 관계자는 3일 “대형 시설용 HVAC 업체나 브랜드는 인수 후에도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나 반도체 공장 등 AI 연관 산업 발전에 따른 공조 수요 확대를 예상하고 적극 투자에 나서고 있다. 독일의 보쉬는 지난해 삼성·LG를 제치고 미국계 기업 존슨콘트롤즈의 HVAC 사업부를 81억 달러(11조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일찍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공조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선 일본의 다이킨도 북미 지역의 데이터센터용 공조기기 수요 확대를 노리고 지난해 멕시코 티후아나 공장 확장에 나섰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중앙공조 시장은 지난해 610억 달러(84조원)에서 2030년 990억 달러(137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중 데이터센터 부문 공조 시장은 지난해 168억 달러(23조원)에서 2030년 441억 달러(61조원)로 성장 전망이 더 가파르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