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영 기자의 ‘살롱 드 미션’] 0.4% 복음화율에 숨은 30만 순교자의 외침

입력 2025-06-07 03:06 수정 2025-06-10 17:30
지난달 19일 방문한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에 있는 마츠라 사료박물관 전경. 이곳에서는 일본 초기 기독교 순교 역사와 관련된 1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복음화율 0.4% 미만으로 ‘영적 불모지’로 불리는 일본. 그러나 이 땅은 1597년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26명의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믿는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다. 이후 250년간 30만명 이상이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기독교 금지령으로 시작된 이 비극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교토에서 나가사키까지 850㎞를 걸어온 순교자들의 행진은 그 자체가 신앙의 증언이었다. 귀가 잘리고 조리돌림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기쁨을 잃지 않았고, 추위와 허기 속에서도 서로를 위하는 우애를 보였다. 10대 청소년들까지 포함된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26성인의 순교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250년간 일본 가톨릭교회는 전례 없는 박해를 견뎌냈다. 단 한 명의 사제도 없는 상황에서 신자들의 손으로만 교회를 지켜온 ‘가쿠레키리시탄’(숨은 기독교 신자)의 역사는 신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이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의 나가사키 등 순례성지를 발굴해온 ㈔한일연합선교회(이사장 정성진 목사)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달 19일부터 나흘간 개최한 순교지 탐방에 취재차 참석했다. 순례 여정의 첫걸음은 나가사키현 히라도에 있는 마쓰라 사료박물관이었다. 박해의 흔적을 담은 그림들 앞에서 순례객들은 숙연히 서 있었다. 복음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화형당하고 거꾸로 매달렸던 이들의 모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자 거룩한 믿음의 유산이었다.

그림 앞에 선 나는 숨이 멎는 듯한 침묵에 잠겼다. 그 고통을 넘어 믿음을 붙든 이들의 결단은 설명보다 깊은 울림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던 그들이 왜 순교의 길을 택했는가. 그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신앙은 때로 생명을 건 선택이며 진리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해왔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확신이었다.

순교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신앙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 왔다. 성경의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니엘은 사자굴 앞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그의 세 친구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믿음으로 불길에 섰다.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도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들은 고난 가운데 더욱 단단해진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일본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성경에 나온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신앙은 오늘날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신앙인가. 편안함과 안전 속에서 드리는 예배만으로 우리는 참된 제자라 할 수 있을까.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상대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순교다. 세속적 가치관에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가치를 지키는 것, 불의한 구조에 맞서는 것,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 모두가 현대적 의미의 순교 정신이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종교의 자유 속에서도 영적으로는 느슨하고 메마를 수 있다. 순교는 극단적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일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참된 순교의 삶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니시자카 언덕에서 울려 퍼진 찬송가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있다. 편안함의 늪에서 깨어나 작지만 진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순교다.

오늘 우리가 그 부름에 응답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일본의 순교자들처럼 당당히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히라도(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