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브랜드 전기차를 모는 40대 직장인 염모씨는 지난 2월 리콜 통지문을 받았다. 배터리 관련 결함이 있을 수 있으니 서비스센터에서 수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분당의 한 서비스센터에 문의했더니 수리하는 데 3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업무상 운전할 일이 잦은 염씨는 그동안 이용할 차량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서비스센터와 본사에선 ‘대차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염씨는 “리콜은 100% 제조사 책임인데 이로 인한 불편을 소비자가 져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염씨처럼 리콜 시 대차 불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잖다.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는데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일단 자동차 기업에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게 크다. 자동차관리법에는 리콜시 대차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규제 대상이 아니다 보니 기업 내부 결정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동차기업들은 어떤 기준을 정해놓고 있을까. 국민일보가 3일 현대자동차·기아·르노코리아·KG모빌리티(KGM)·한국GM 등 국내 완성차업체 5곳과 주요 수입차 브랜드 5곳에 문의한 결과, 모든 업체로부터 동일한 답을 받았다. 기업들은 “수리가 하루 이상 걸리는 경우 기본적으로 대차를 제공한다”고 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서비스센터가 보유한 대여차나 렌터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염씨 사례처럼 대차를 못 받는 경우가 흔히 생기는 이유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전부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단서를 뒀다. 딜러사의 대차 현황이나 수리 상황에 따라 예외가 발생한다. A사 관계자는 “하루 이상 수리가 필요한 경우 대차 제공 대상에 포함된다는 본사 가이드라인을 딜러사에 제공한다. 다만 딜러사별 대차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했다. B사는 “작업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는 리콜 수리는 픽업과 딜리버리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필요시’ 대차를 포함해 대체 교통수단을 제공한다”고 답했다.
C사는 홈페이지에 ‘보증 수리의 경우 접수 후 이틀을 초과하는 경우 대차를 제공하지만 서비스센터 상황에 따라 대차 제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적었다. 다른 업체들도 “서비스센터 대여차 대수 및 운영 상황에 따라 대차 서비스를 지원한다” “딜러사 재량이나 상황에 따라 대차를 제공한다” “사안에 따라 운영한다” 등 여지를 뒀다.
완성차업체가 ‘대차 예약이 밀려있다’는 핑계를 대며 일부러 회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에 문의하니 “주관부서인 국토교통부에서 다뤄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국토부는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완성차업체가 자율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리콜 대상 소비자에게 일괄적으로 대차를 제공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대상이 수천 대에 달하는 리콜이 있을 수도 있다. 대차를 제공하는 걸 법으로 강제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