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 폭죽·케이크 없어요… 조용한 승진 문화 확산

입력 2025-06-04 00:42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조용한 승진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과거처럼 동료의 승진 소식이 회사 인트라넷에 공지돼 폭죽과 케이크로 축하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2년부터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시행 중이다. 이 제도에 따라 회사 인트라넷에 표기된 직급과 사번 정보가 삭제됐고, 매년 3월 진행되던 공식 승격자 발표도 폐지됐다. 전 직원 간 상호 존댓말 사용도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는 제도 시행 배경에 대해 상호 협력과 소통 과정에 수평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직급 체계도 단순해졌다. 부사장을 제외한 모든 직급은 ‘프로(Pro)’라는 명칭으로 통일됐다. 부장과 차장 같은 직급의 구분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업무상 처음 만나게 되는 다른 팀원들의 연차를 말투나 외모로만 추측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한 삼성전자 직원은 “얼굴을 보고 부장님 연차로 생각해 깍듯하게 대했는데 알고 보니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배였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옆 팀에 전화할 때 고연차 선배에게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워 인트라넷에 등록된 사진 중 후배로 보이는 팀원에게 연락한다”며 “하지만 등록된 사진이 오래된 경우가 많아 이걸로 연차를 판별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도 2019년부터 임원급인 부사장을 제외한 모든 직급을 ‘테크니컬리더(TL)’로 통일하고 공식 승진자 발표를 없앴다. SK하이닉스는 개별 직원이 연차에 따라 인사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방식의 커리어레벨 제도를 운용 중이다. 마일리지가 쌓이면 커리어레벨이 1에서 5까지 순차적으로 상승하며, 해당 레벨은 본인 외에는 알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연차를 모르기 때문에 상호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해진 측면도 있지만, 예전처럼 다 함께 케이크 촛불을 불며 축하하던 시끌벅적한 승진 파티를 그리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