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1조6445억 달러로 세계 13위다. 상장기업 수는 2319개로 세계 8위 수준이다. 올해는 지난 2월 기준 시가총액 1조6807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한국 증시를 신흥시장으로 분류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봤을 때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정보 제공, 기업 지배구조 등에서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4일 출범한 새 정부는 대선 기간 MSCI 편입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자본시장 선진화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MSCI가 지적한 여러 문제 중에서도 특히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상법 개정이 현실화할지 주목하고 있다.
‘공매도 재개’ 등은 성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달 발표될 MSCI의 연례 시장분류에서 한국이 선진지수에 바로 편입되는 것보다 선진지수 편입을 위한 관찰 대상국(워치리스트, 후보국) 포함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우선 관찰 대상국에 포함된 후 일정 기간 심사를 거쳐 선진지수에 편입되는 것이 통상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MSCI는 지난해 6월 20일 2024년 연례 시장분류를 발표하며 한국이 선진지수에 편입되려면 ‘공매도 시장 전면 재개’ ‘외환시장 운영 시간 확대(24시간화 추진)’ ‘기업 지배구조 및 시장 접근성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영문 공시 부족, 인덱스 상품 개발이 어려운 환경 등을 과제로 꼽았다.
이에 지난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 등 MSCI가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공매도 금지 조처가 지난 3월 말 약 5년 만에 해제된 것과 지난해 하반기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새벽 2시까지로 연장된 점이 그 일환이었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꼽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일반 주주들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재계 등의 반발에 부딪혀 입장을 선회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지만 당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입법이 불발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충실 의무를 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새 정부는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대선 기간 내내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질문에 “(취임 후) 2~3주 안에 처리할 것”이라며 “처리에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상법 개정을 통해 대주주의 경영권 남용, 기업의 물적 분할, 재상장 등 일반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막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대선 공약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법 개정이나 주주 친화 정책 유도 등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영문 공시·지수 사용권 확대돼야”
MSCI 편입을 위해서는 영문 공시 부족도 해결돼야 한다. 외국인 입장에서 영문 정보가 부실하면 투자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아직 영문 공시가 보편화하지 않은 상태다. 금융 당국이 추진 중인 영문 공시 확대 정책은 현재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다. 당국은 내년에 의무화 대상을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국거래소의 지수 사용권 개방이 본격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수 사용권 개방이란 코스피200 등 한국 지수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의 해외 상장을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코스피200 지수의 사용권을 개방한다고 하면 그동안은 특정 운용사만 한국의 지수를 활용한 상장지수펀드(ETF) 등 파생상품을 출시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모든 운용사가 자유롭게 관련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래소는 지난 2월 올해 하반기부터 지수 사용권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일단 한국의 거래시간과 겹치지 않은 시간대 선물 상품의 상장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워치리스트 지정 지연될 수도
아직 MSCI가 지적한 모든 사항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진지수 편입 후보국 지정이 내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편입 요건 모두를 충족한 뒤 워치리스트에 등재되는 게 일반적이므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1년여간의 추가 관찰 기간을 거치면 선진지수 편입은 2028년에서야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편입이 확정되면 외국인 투자 자금 유입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며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특히 MSCI 선진국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패시브 펀드의 매수세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증시가 MSCI 선진지수에 편입될 경우 국내 시장에 75조원이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지수 추종 자금은 주로 장기자금으로 구성돼 외부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해외 유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이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달 MSCI 선진지수 워치리스트 대상이 되더라도 실제 편입 여부 발표는 내년 6월”이라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점, 편입 시점의 상황에 따라 자금 유출입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MSCI 선진지수 편입을 위해 문제점을 개선하면 지수 편입과 무관하게 국내 증시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