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무히카처럼, 정조처럼

입력 2025-06-04 00:38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89세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지만 그의 유산은 풍요로웠다. 재임 중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대통령궁 대신 허름한 시골집에 살았으며 경호원 대신 반려견 마누엘라를 곁에 뒀던 사람.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니.

무히카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2012년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닥치자 그는 대통령궁을 노숙자들에게 내줬다. 대신 자신은 사저인 농가에서 작고 오래된 파란색 폭스바겐 비틀을 직접 몰고 출퇴근했다. 그 차가 재산의 전부였다.

그의 청렴함은 연출된 게 아니었다. 게릴라 출신인 무히카는 무장투쟁으로 독재에 맞섰고 감옥에서 13년을 보냈다. 출소 후 정치에 투신했다 기적처럼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파란만장한 이력에도 그는 ‘싸우는 정치인’이 아닌 ‘함께 사는 정치인’의 표본이 됐다. 언제나 민심을 잣대로 삼고 정책을 정직하게 설명했다. 무히카는 퇴임 후 농사를 짓고 철학 강연을 다니면서도 위선 없이 살았다. 2024년 식도암 투병 사실을 밝힌 뒤 올초 가진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기는 쉽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조언을 남겼다. 국민들은 그의 장례식에 꽃을 들고나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우리 호세씨’라는 뜻을 지닌 무히카의 애칭 ‘엘 페페’를 외치며 작별을 고했다.

우리에게도 무히카 같은 리더가 있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다. 그는 말과 행동이 신중하고 근엄했다.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멀리하고 공적인 이익만 추구한 성군이었다. 또 신료들이 반대하는데도 거리로 나가 백성들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백성들은 나의 자식들이고, 백성들이 격쟁을 통해 나에게 호소하는 건 부모에게 호소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가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위민정치를 펼쳤다.

정조는 검소하고 청렴했다. 문집 ‘일득록’에는 소탈함이 잘 드러난다. 하루에 두 끼를 먹되 한 끼에 다섯 가지 반찬만 먹겠다고 선언한 뒤 24년의 재위기간 내내 이를 지켰다. 모든 경서를 완벽하게 외울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정조는 어릴 때부터 늘 꿇어앉아 책을 읽었다. 그래서 바지 무릎과 버선 끝이 먼저 해어졌는데 이를 버리지 않고 꿰매 입었다고 한다. 몸이 아픈 정조를 찾아온 약원의 채제공은 정조의 형편없는 이불을 보고 “전하께서 쓰시는 이불을 보고 우러러 존경하다 못해 황송하고 부끄러운 생각까지 든다”고 탄복했다. 심지어 정조의 침전인 영춘헌은 하도 낡아 빗물이 스며들고 곰팡이가 슬었는데 정조는 끝내 신축 공사를 하지 않았다.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대통령 당선인이 지역과 계층, 남북과 세대, 성별 간 갈등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을 구하길, 또 계엄과 탄핵으로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어줄 지도자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무히카처럼, 정조처럼 최고 권력을 쥐고도 스스로 왕관의 무게를 줄이고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되길 희망한다. 호화로운 궁궐을 노숙자에게 주고 대신 낡은 농가를 택한 대통령 같은, 백성의 억울함 앞에 신하들 반대를 무릅쓰고 길로 나서는 왕 같은 리더 말이다.

우리는 완벽한 지도자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은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얻는 자리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이 당선인이 퇴임할 때도 국민들로부터 ‘우리 재명씨’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김상기 플랫폼전략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