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제로에너지 건축물(ZEB)에 주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탄소배출 저감 목적도 있지만, 당장 이달 말부터 민간이 짓는 아파트에 ZEB 인증이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정책에 부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친환경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친환경 공법, 에너지절약형 조명, 건물일체형 태양광 시스템 등 ZEB를 위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오는 30일부터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ZEB 인증을 받아야 한다.
ZEB는 에너지 절감과 신재생에너지 설비 등으로 에너지 소요량 자체를 충당하는 ‘친환경 건축물’에 대해서 인증하는 제도다. ZEB는 에너지 자립률 등에 따라 총 5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5등급(자립률 20~40%)에 준하는 규제가 민간아파트에까지 의무화된다.
건설업계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롯데건설은 롯데케미칼·엡스코어·스탠다드에너지와 ZEB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본사 사옥에 ‘건물일체형 태양광 발전 시스템’(BIPV)을 설치해 시범 운영 중이다. BIPV는 건물 외벽에 설치돼 전력을 생산하면서 외장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여기서 생산된 에너지는 ‘바나듐 이온 배터리 기반의 에너지저장장치’(VIB ESS)에 저장된다. 이 배터리는 물 기반의 전해액을 활용해 화재 위험이 낮고 수명이 길고 높은 충전효율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술 개발도 눈에 띈다. 포스코이앤씨는 건축물 부위별 단열·창호 성능과 설비 효율을 끌어올려 에너지를 절감하고, 태양광 발전 등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태양광 설비를 활용해 세대당 에너지 소비를 25~35%까지 절감하고 에너지 자립률을 두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입주민들은 냉난방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건물 사용 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약 30% 이상 저감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인천 송도에 있는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를 2019년 준공하며 제로에너지 기술을 적용했다. 이 단지는 외부로 새는 에너지를 차단하는 패시브 기술인 건물 외피 단열과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액티브 기술인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췄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으로 에너지 효율을 실시간으로 관리, ‘고층형 제로에너지 빌딩 인증’을 받았다. 국내 최초로 건축물 에너지 효율등급 1++을 달성하고, ZEB 5등급(에너지자립률 23.37%)을 받기도 했다.
DL이앤씨는 대전에 ‘건축환경 연구센터 에코하우스’를 설립했다. 지상 3층, 지하 1층 연면적 3200㎡인 이곳에서 DL 이앤씨는 태양열, 지열냉난방,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 기술을 실증하며 에너지 자립형 주거공간 기술 상용화를 준비 중이다. 디지털 트윈 기반 에너지 시뮬레이션 도구를 개발해 기술 실증도 수행할 예정이다.
친환경 기술은 디테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GS건설은 최근 자체 개발한 ‘에너지 절약형 조명’을 브랜드 ‘자이(Xi)’에 쓰고 있다. 이 조명 시스템은 초고효율 LED와 IoT(사물인터넷)기반으로 구성돼 있다. 제어 기능으로 기존 대비 30~50% 수준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어 전기요금 절감과 탄소 배출 감소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건설사들은 ZEB 인증에 준비하고 있지만 공사비 부담도 안고 있다. 건설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자재비, 인건비 상승이 꾸준한 가운데 ZEB 인증까지 의무화되면 친환경 설비와 자재를 추가로 적용해 비용 부담이 커진다.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ZEB 5등급이 민간아파트에 적용되면 국민 평형인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가구당 공사비는 최소 약 293만원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형 건설업계 관계자는 “미래를 위해 건설사가 친환경 건축과 관련한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인증을 위해 사용되는 자재의 성능이 높고 친환경 건축 기술이 적용되면 공사비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