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에는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유배됐던 청령포가 있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이곳은 동, 남, 북 3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섬과 같은 곳이다.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면서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청령포에 유배됐다. 17살 단종은 이곳에서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움과 시름을 달랬다. 그가 머물던 집 앞에는 관음송이 수백 년 세월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어린 단종이 유배되고 사약을 받는 고비에는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육신들의 반란이 있었다. 조카에게서 무력으로 권력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권좌에 올라서도 불안했던 세조는 결국 어린 조카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권력 투쟁의 슬픈 단면이다. 남을 물어뜯고 피 흘리는 역사는 과거에만 있지 않다. 권력을 잡기 위해 사생결단 투쟁을 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쟁취한 뒤에는 정적들을 제거하고 복수하는 불행한 역사는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교만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
권력의 정점에 올랐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교만해지기 쉽다. 더구나 최고 자리에 서면 주변에 직언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달콤한 말을 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최고 권력자가 사리 분별심을 잃고 독불장군처럼 행세하다 몰락하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온 직전 대통령의 모습에서 교만과 아집의 말로를 목도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초 화합과 통합을 외치지만 정적을 품지 못하고 매번 복수혈전을 되풀이하는 것도 지나친 자만과 극단적 이기심이 앞서서일 것이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넉넉하게 상대방을 품지 못하고 항상 경계하고 힘을 빼려 하는 것일 터다.
교만과 이기심은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철학적 주제가 돼 왔다. 플라톤은 교만을 영혼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이상적 국가는 각 계층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조화를 이루는 상태인데, 교만은 이러한 조화를 깨뜨리고 불의를 초래한다고 봤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교만을 ‘과도한 자존심’으로 정의했다. 그는 중용의 덕을 강조하며 교만은 겸손과 비굴함 사이의 중용을 벗어난 극단적 상태라고 봤다. 이기심도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세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만을 ‘하나님에 대한 불경’으로 여겼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겸손해야 하지만 교만은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더 우월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이기심을 원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 본 것이다.
많은 철학자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고 봤다. 토머스 홉스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며 교만은 이러한 경쟁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봤다. 반면 ‘절대 진리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며 신을 부정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교만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는 ‘힘에의 의지’를 강조하며, 교만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긍정하고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봤다. 다만 이러한 교만이 타인을 억압하거나 착취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경계했다.
“지식인의 교만은 자신의 사상과 개념을 더욱 확고한 것으로 만든다. 교만은 남들의 비판에 상관없이 자신을 존경하고, 어울리는 명예를 찾아 수여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이웃들을 경멸한다. 지식인은 자신의 교만한 성품을 만날 때마다 마치 절친한 동료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그의 사상을 인정하는 친구가 바로 교만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만의 정신적 인격과 독립적인 실체를 인정한다. 내가 평소 나의 교만을 ‘지적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 검은 뿌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도덕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겸손의 문화에서 ‘대단한 나’(Big Me)의 문화로 이동했다고 말한다. 1950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생 12%가 자신을 ‘매우 중요한 사람’으로 본다고 대답했지만 2005년에는 80%에 달했다는 것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등 ‘자아도취 평균 점수’는 최근 20년 새 30%나 높아졌다. 1976년 설문조사에서 16개 인생 목표 중 15위를 차지했던 명성(fame)이 30년 후에는 젊은이 대다수에게 가장 중요한 개인적 목표가 됐다. 지금은 겸손으로 가는 길이 몇 세대 전보다 훨씬 더 멀어졌다.
이기적 그리스도인은 반(反)그리스도인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 고집 센 자아가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동적인 옛 반응에 따라 행동하면 계속해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CS 루이스는 저서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을 철저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 상태(the complete anti-God state of mind)로 규정했다. 탐욕이나 정욕이나 식탐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존할 수도 있지만 교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 이야기는 예수님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신 비유다.(눅 18:9)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인간이 되신 일을 통해 너무도 아름다운 겸손을 보여 주셨다. 역사학자들이 인정하듯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약점으로 여겼던 겸손이 오늘날 미덕으로 여겨지는 변화는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 눅 14:11)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예수는 우리를 와서 죽으라고 부르셨다”고 정확히 짚어준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는 죽은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우선 말이 없다. 그래서 자기주장이 없다. 둘째 욕심이 없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을 내 안에 품지 않는다. 셋째 두려움이 없다. 사랑은 허다한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를 방어하거나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신을 방어할 욕망으로부터도 자유하다. 그는 ‘교회 속 반(反) 그리스도인’에서 이기적 그리스도인은 반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존 오트버그 목사도 저서 ‘삶을 바로잡을 용기’에서 겸손해지려면 다음 세 가지를 삼가라고 권면한다. 척하기, 가정하기, 밀어붙이기다. 특권 의식을 버려라. 서열 1위로 대접받겠다는 기대를 버려라. 상석에 앉으려는 생각을 버려라. 여자를 얕보고 가르치려는 짓을 그만두라. 식당 종업원을 존중하라. 좋은 주차 자리를 포기하라. 상대방의 동기가 나쁘다고 가정하지 마라. 밀어붙이기를 삼가라.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마라. 귀를 기울이라. 그의 조언이다.
성경 속 교만과 이기적인 모습
창세기의 바벨탑은 인간 교만의 상징이자 탐욕의 징표다. 성과 대를 쌓아 하늘에 닿게 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인간의 극단적인 교만과 이기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들의 교만을 흩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해 계획을 좌절시킨다.(창 11:1~9)
이집트의 바로 왕도 자신의 권력을 과신하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했다. 그의 교만은 결국 재앙과 파멸을 불러왔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 역시 막강한 권세를 바탕으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절하게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교만을 보였다. 하나님은 그를 징계해 정신 이상을 겪게 했다.(단 4장) 유대의 헤롯 아그립바 1세도 백성들이 자신을 신처럼 숭배하자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이 차지하려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행 12:20~23)
이 외에도 성경에는 교만과 이기심을 경계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담겨 있다. 예수는 제자 베드로를 향해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고 꾸짖으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랑하는 것을 삼가라고 권고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전 3:21)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고전 5:6) 교만에 관한 경고도 많다.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전 4:6)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우리 안에 호시탐탐 둥지를 트는 교만한 마음과 이기적인 모습을 떨쳐내야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영월=글·사진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