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반입 드론으로 본토 공격… 우크라의 ‘진주만급 작전’

입력 2025-06-02 18:29
바실 말리우크 우크라이나 보안국장이 1일(현지시간) 드론 공격을 단행한 러시아 공군기지와 전략폭격기 등 목표물을 촬영한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한복판까지 밀반입한 드론으로 공군기지를 공격해 전략폭격기 41대를 타격했다. 1년6개월 넘는 기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이번 작전을 놓고 ‘진주만 공습’ 수준의 충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엑스에서 “적의 영토에서 군사 목표물을 타격했다. 러시아 공군기지에 배치된 전략미사일 운반체의 34%를 파괴했다”며 “계획부터 실행까지 1년6개월9일이 소요됐다. 매우 훌륭한 성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 벨라야기지를 포함한 러시아 영내 공군기지 4곳을 공격했다”며 “약 70억 달러(9조6000억원)어치의 러시아 전폭기 41대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르쿠츠크는 우크라이나에서 4300㎞ 이상 떨어진 곳으로 몽골과 가깝다. 우크라이나군이 이 정도의 원거리 공격을 단행한 것은 2022 년 2월 개전 이후 처음이다.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공격한 나머지 3곳은 러시아 서부 랴잔 인근 디아길레보기지, 수도 모스크바 근교의 이바노보기지, 북서부 무르만스크의 올레냐기지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와 더불어 극동 지역인 아무르까지 모두 5곳의 공군기지를 공격당했다고 발표하면서 “이르쿠츠크와 무르만스크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의 드론 테러를 격퇴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공개한 영상에서 드론이 러시아 공군기지 활주로의 전폭기를 타격해 화염이 치솟는 장면. AP연합뉴스

‘거미집’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젤렌스키가 지휘하고 바실 말리우크 SBU 국장이 총괄했다.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소형 드론을 목재 컨테이너에 실어 러시아 영내로 밀반입한 뒤 화물 트럭으로 위장한 차량에 보관했다. 작전이 시작되자 컨테이너 지붕은 원격 장치로 자동 개방됐고, 그 안에서 날아오른 드론이 특정 지역으로 집결한 뒤 러시아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젤렌스키는 “모두 117대의 드론을 투입했고 같은 수의 조종사가 참여했다”며 “우리 병력은 작전 개시 직전 러시아에서 철수해 지금은 안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의 작전 본부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청사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보 당국 목전에서도 들키지 않았을 정도의 작전 수행 능력을 강조해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재개된 양국의 2차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는 “작전 계획을 미국에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안보 전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이번 작전을 진주만 공습에 비유했다. 그는 “1941년 일본 해군의 진주만 공습은 항공모함이 해전의 중심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줘 전쟁의 규칙을 바꿨다”며 “우크라이나도 전쟁의 규칙을 새로 썼다.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인들처럼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