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문성모 (8) 최원영 사장의 조건 없는 도움으로 유학 무사히 마쳐

입력 2025-06-04 03:04
문성모(왼쪽에서 두 번째) 목사 부부가 2019년 서울 강남구 강남제일교회에서 최원영 회장 부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 목사 제공

독일에서 공부한 지 1년 후인 1984년 여름 방학에 잠시 귀국했다. 가지고 간 돈이 바닥났고, 결혼도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같은 해 9월 22일 아내 김은유와 결혼했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기타 여러 사정으로 아내를 남겨두고 다시 독일로 가야 했다.

“최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문 목사님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독일로 다시 떠나기 전, 당시 동아그룹의 최원영 사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최 사장과의 인연은 내가 신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됐다. 그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였던 서울시립교향악단 더블베이스 연주자 안동혁 선생의 주선으로 만났다. 처음에는 최 사장이 나에게 작곡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만나기 시작해 매 주일 그의 자택인 장충동으로 갔다.

음악을 좋아하던 최 사장은 그때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다. 나중에는 서울대 대학원에 플루트 전공으로 입학해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월간 음악잡지 ‘객석’을 창간하고, 충무로에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을 여는 등 음악 애호가와 전문가 사이를 넘나들면서 살았다.

“플루트 한번 배워보실래요.” 최 사장은 내게 플루트를 선물하며 직접 레슨까지 해주었다. 나는 그때부터 플루트를 취미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최 사장에게 작곡을 가르쳤고, 그는 내게 플루트를 지도하며 깊은 교분을 쌓았다.

그러던 중 최 사장이 신앙에 관한 질문을 자주 던졌다. 우리는 신앙생활과 성경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 레슨보다 신앙적 대화가 우리의 만남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최 사장은 사업가였지만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을 품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와 교분을 쌓았지만,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지원을 기대하거나 약속받은 적은 없었다.

“문 목사님, 독일에서 생활을 어떻게 하시나요. 장학금은 받고 있나요.” 잠시 귀국해 만난 자리에서 최 사장은 유학 중인 내 재정 상태를 물었고, 대책이 없는 나를 흔쾌히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다. 당시 최 사장의 조건 없는 경제적 도움이 아니었으면 나는 독일에서 공부를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최 사장의 재정지원으로 독일에서 공부한 지 6~7년이 지났을 무렵, 당시 박창환 장신대 학장이 김용복 전 한일장신대 총장과 함께 독일로 오셔서 유학생 몇을 만나셨다. 박 학장님은 내가 공식적인 장학금 없이 개인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정을 들으신 후에 김 총장에게 부탁해 독일교회 장학금(DAAD Scholarship)을 받게 해주셨다.

당시에 김 총장은 독일 신학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세계적인 신학자였다. 그의 노력으로 꿈에 그리던 독일 개신교단 장학금을 받게 되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오병이어의 기적이 재현되는 것 같은 기도의 응답이었다. 물론 최 사장님에게는 그동안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재정적 후원을 마무리했다. 그는 나중에 그룹의 회장으로 승진했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