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상찮은 미·중 패권 경쟁, 새 정부 외교력 발휘해야

입력 2025-06-03 01:20
사진=AP연합뉴스

지난 주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반중국 전선에 동참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을 약속했다. (중국 위협에 직면한) 아시아 동맹들도 예외가 아니다”고 했다. GDP 5%는 한국 국방비 규모(GDP의 2.6%)의 약 두 배다. 또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스탠스에 대한 사실상의 단절도 촉구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는 얘기다.

중국 움직임도 심상찮다. 중국 해군은 지난달 말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 안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서해 인근에 불법 구조물을 설치했고 PMZ에 시추공까지 뚫은 것으로 보도됐다. 엄연한 한·중 어업협정 위반이다. 서해공정이 노골화되는 모양새다. 양국의 모습은 동아시아 패권 경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한반도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상정해 국방 전략을 변경하는 중이다. 최근 미 언론 등에서 제기된 주한미군 감축설도 주한미군의 임무를 남한 방어에서 중국 견제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PMZ 도발 역시 자국 군함의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는 등 아시아 해양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서해까지 ‘내해(內海)화’ 하려는 속셈이다. 안보가 곧 경제인 요즘, 한국 제 1~2 교역국의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둘러싼 갈등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 뒤 국가 외교·안보를 지휘할 대선 후보들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할 때 답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 견제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전술핵 재배치’ 같은 막연한 공약만 있을 뿐 변화하는 동맹관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답이 없다. 새 정부는 우리의 안보·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외교 전략의 방향을 정교히 가다듬어야 한다. 이를 위해 치밀한 외교력과 협상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