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이 기표소에 들어가 후보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가 그려진 도장을 찍고 나오는 방식을 기호식 투표라고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대한민국을 만든 70가지 선거 이야기’에 따르면 1948년 민주 선거가 도입된 이후 초기 선거법엔 기표 용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었다.
실제 1948년 5·10 총선거에서는 기표소에 마련된 필기 용구로 지지하는 후보자 칸에 O, X, V 등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후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부터 기표 모형이 ‘O’로 정해졌다. 기표 용구에 대한 규정이 없어 대나무나 붓대, 심지어 탄피가 기표 용구로 쓰이기도 했다. 당시 6·25 전쟁이 진행 중이어서 일부 지역에선 탄피를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선 기표 모형인 동그라미 안에 사람 ‘인(人)’ 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인(人)’ 자가 ‘시옷(ㅅ)’ 자와 유사해 김영삼 후보의 이름을 연상케 한다는 항의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1994년 통합선거법이 제정되면서 기표 모형은 현재와 같이 동그라미 안에 점 ‘복(卜)’ 자가 들어간 형태로 바뀌었다. 기표 용구는 꾸준히 개선돼 기표 즉시 건조되는 특수한 속건성 유성잉크가 도입됐다. 가장 길었던 대선 투표용지는 제19대(2017년) 대선으로 15명의 후보가 나와 용지 길이만 28.5cm에 달했다. 제20대(2022년) 대선은 후보 14명으로 27cm로 뒤를 이었다. 이번 대선의 투표용지 길이는 21.6cm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56년 5월19일 연설에서 투표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한 명언이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라고 했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푸념이 이번에도 넘쳐난다. 하지만 플라톤의 말처럼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선택은 해야 한다. 고뇌에 찬 국민의 선택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