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한 표가 필요하다

입력 2025-06-03 00:31

이번 대선 투표율이 이전보다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대선에서는 후보 TV토론 시청률이 30%를 훨씬 넘겼다. 하지만 이번 대선 토론은 지상파뿐 아니라 종편에서도 중계했지만 시청률은 20% 내외에 그쳤다. 사전투표율도 34.7%로 지난 대선의 36.9%보다 낮았다. 사전투표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선거 당일 높은 투표율을 낙관하기 어렵다.

조기 대선으로 인한 정치 혼란 우려가 크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다. 이번 선거에는 유독 맘에 드는 후보나 정당이 없어 투표 의사가 없다는 유권자가 유난히 많다. 작금의 정치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낼 후보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는 상대 후보를 헐뜯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주력한 선거운동이 한몫했다. 대선 후보들의 정책적 미래 비전이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다양하게 부여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라는 점에서 윤석열정부의 책임을 묻는 선거로 본다. 다른 이에게는 정치 독주를 막아야 하는 선거로 인식될 수 있다. 기성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계기가 되는 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해석들에도 불구하고 공통적 인식이 있다. 바로 현재 상황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절실함이다.

그렇다면 정치 위기를 해결할 리더를 뽑는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적극적으로 지지할 후보가 없는 유권자라면,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의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다소 냉소적 묘사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기권은 최악의 후보가 뽑힐 가능성을 간과하는 것이 된다.

선거 결과가 뻔하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꽤 많다. 투표하지 않아도 지지하는 후보가 이길 것이 확실해 굳이 투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있다. 반대로 한 표를 보태도 지지하는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없어 포기한다는 유권자들도 있다. 그러나 투표는 승패를 결정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정당의 득표율은 이후 정치 구도에 영향을 미친다. 승리한 정당에 대한 지지가 많을수록 집권당의 정통성이 높아진다. 높은 지지율은 새 정부가 개혁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원동력이 된다. 패한 정당에 대한 투표는 야당 지지 세력도 상당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타협의 명분과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제3당 지지자 역시 투표에 참여해 최선의 지지율을 보여주는 것이 향후 정국에서 정당 위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가 유효투표의 10% 이상 득표하면 법적 선거비용의 절반을 보전받을 수 있고,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 보전되기 때문에 군소 정당에는 한 표가 절실하다. 선거에서 승리 가능성이 없기에 기권하거나 차선의 정당을 택하는 전략투표는 군소 정당에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어떤 경우든 투표에 참여해 지지 정당에 표를 보태주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기권도 정치적 표현이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기권은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이라는 항의 전달에 그칠 뿐이다. 기권을 택해 침묵한다면 선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무시된다. 4400만명 넘는 선거인 가운데 내 한 표가 뭐 그리 중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투표한 모든 한 표를 역사에 기록한다.

선거를 주말에 치르는 국가는 여럿이지만 우리나라처럼 선거일을 법정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드물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유권자의 투표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주권에서 시작한다는 진부한 명제를 새삼 떠올리게 되는 선거날이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