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누가 현금 써요?” 화폐 빈자리, 디지털 코인이 채운다

입력 2025-06-03 00:00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미 재무부는 내년 초까지 1센트 동전의 신규 유통을 완전히 중단하기로 했다. 1센트 동전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동전이다. 1792년 미국에서 조폐국이 설립된 이후 그 이듬해부터 생산됐다. 그러나 200년 넘은 역사도 동전의 단계적 퇴출 수순을 막지 못했다.

1센트 동전의 퇴장은 예견된 미래였다.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통화 가치보다 컸다. 1센트 동전 1개의 주조 비용은 약 3.7센트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가 가속화하면서 동전을 사람들이 쓰지 않게 된 데 더 큰 이유가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현재 유통 중인 동전의 60%는 동전통에 보관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인들이 매년 최대 6800만 달러 상당의 동전을 버린다고 했다. WSJ은 “미국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는 2012년 1센트 동전 생산을 중단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수십년 전에 1센트 동전 생산을 멈췄다.

망할 뻔한 현금운송업체


사라지는 게 동전뿐일까.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세 나라 모두 현금사용도가 현저히 낮은 국가들이다. 전자결제 서비스 업체 월드페이의 ‘2024년 글로벌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캐나다의 현금거래(POS 결제 기준) 비중은 6%였다. 호주, 뉴질랜드는 그보다 조금 높은 7%였다. 세계 현금거래 비중 평균 16%보다도 훨씬 낮다.

호주에서는 현금 이용이 줄면서 현지 현금운송업체 ‘아마가드’가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23년 호주의 은행 점포는 2017년 대비 37% 감소했고, ATM 기기는 1만3814개에서 5693개로 줄었다. 아마가드 입장에선 그만큼 실어 나를 현금이 줄었다는 걸 의미한다. 아마가드는 호주 시장에서 약 90%의 현금을 운송하고 있다. 그러나 운송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사업 지속이 불투명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6월 고객사들이 1년간 5000만 호주달러를 긴급 투입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이 같은 지원이 올해도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월드페이는 전 세계가 현금 없는 사회로 다가가고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 현금거래 비중이 2027년에는 11%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탈현금’ 가속

한국이라고 다를까. ‘탈현금화’는 일상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다. 2018년 스타벅스가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은 전국 및 다른 동종업계 매장으로 확대됐고, 최근 5년 새 급성장한 무인 가게에선 키오스크만 이용할 수 있어 현금 결제가 아예 불가능하다. 시장에서도 디지털 온누리카드를 이용하고 노점상에선 계좌이체를 한다. 현금 없는 버스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ATM 기기는 갈수록 희귀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ATM 기기는 2020년 8만7773대에서 2023년 8만907대로 줄었다. 5년 새 ATM 기기 4대 중 1대꼴로 사라진 중국에 비해선 나은 편이나 그렇다고 그 수가 적은 건 아니다.


현금 이용 비중(건수 기준)도 10% 중반대로 떨어졌다. 2013년에 41.3%에 달했으나 2015년(36.0%) 30%대로 떨어지더니 지난해엔 15.9%까지 낮아졌다. 10년 전만 해도 10번 결제 시 4번은 현금을 썼는데, 이제는 1~2번 쓰는 셈이다. 결제액 기준 현금 비중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한은이 ‘2024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인용한 월드페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현금사용도는 2023년 기준 10%로 집계됐다.

현금은 인프라 유지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도난, 분실 위험도 크다. 편리함을 갖춘 각종 페이가 현금의 빈자리를 채웠다. 기술의 발달은 돈의 외형을 축소시키고 본질만 남겼다. 한은은 한국 역시 다른 국가처럼 현금사용도의 장기 하락 흐름을 피하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단기간 내 북유럽 국가와 같이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3% 내외)에 도달하기 보다는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물 대신하는 디지털 코인

실물 경제 동전은 사라지고 있지만 디지털 코인은 힘을 얻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CBDC를 발행하는 것도 디지털 코인이 미래 금융 시스템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CBDC란 중앙은행이 제조·발행·유통하는 디지털 화폐로 기존 법화의 형태만 변화한 것일 뿐 동일한 화폐 가치를 지닌다. 한은의 경우 올해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CBDC 실거래 테스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민간에선 결제 수단으로서 디지털 코인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 중심에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 화폐에 코인 가치를 1대 1로 연동해 기존 가상자산들이 지닌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을 말한다. 당초 가격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을 안정적으로 거래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안정적인 가격 변동성 덕에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결제, 송금, 정산 등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2373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은 2028년 말까지 해당 시장이 2조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월가 대형 은행들도 스테이블코인 시장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최근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웰스파고 등 은행들은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WSJ은 월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암호화폐와 전통 금융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전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