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관위, 투명·공정한 본투표 관리에 사활 걸라

입력 2025-06-02 01:20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1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제21대 대통령선거 우편투표함 및 사전투표함 보관상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선 사전투표 부실 관리는 음모론에 다시 빌미를 줬다. 선거사무원이 대리투표를 하고, 투표용지가 외부로 반출되고, 총선 투표용지가 발견되는 등 황당한 일이 속출하면서 부정선거 음모론 집단의 선거 방해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전투표 기간 이미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다. 이들의 웹사이트에 ‘중국인이 투표하고 있다’거나 ‘투표 인원이 부풀려졌다’는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이 이어졌고, 이를 감시한다면서 투표소에 몰려가 ‘중국인이 아닌지’ 질문 공세를 펴는 등의 상황이 벌어졌다. 투표관리관을 협박·폭행하고,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에 무단 침입까지 했던 이들이 본투표에서 더욱 극렬히 선거 방해에 나설 태세다. “충돌을 두려워 말라” “정면 돌파해 부정선거를 잡아내라”며 선동하는 목소리가 음모론 유튜버들을 통해 확산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지난 몇 달 우리가 겪은 사회적 갈등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번 대선은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관리를 통해 그것을 일소하는 계기가 됐어야 했다. 지난 총선의 소쿠리 투표로 국민적 신뢰를 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여전한 부실을 드러내며 음모론을 무력화할 기회, 갈등의 원인을 제거할 기회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선관위원장의 사과 정도로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당장은 본투표의 순조로운 진행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다. 남은 시간이라도 비상체제로 조직을 총동원해 잡음의 소지를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본투표 현장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선거 방해 행위에는 법과 원칙에 따른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유권자의 참정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검경 등 유관기관과 적극적인 공조에 나서야 할 때다.

선거 후에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허점의 원인을 찾아내고,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는 작업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것을 선관위의 자체적인 수단에 맡기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전국 단위 대형 선거에서 연거푸 드러난 부실 관리는 선관위가 그동안 수차례 공언했던 자구책의 효력이 없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조직의 난맥상은 ‘중앙채용비리위원회’라 비웃는 조어가 회자될 만큼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직원들이 선거가 있는 해를 골라 휴직을 하는 게 당연시되고, 그 빈자리를 채우느라 사람을 새로 뽑는 과정은 비리로 점철돼 있었다. 헌법기관이란 이유로 감시의 시선을 차단한 채, 비상근 위원장 체제의 부실한 감독 기능 속에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방만함이 너무 오래 누적돼 왔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절차이며, 그 공정성을 담보하는 권위를 선관위가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선관위는 그렇지 못하다.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