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규제 강화 공약에 ‘자진상폐’ 기업 나왔다

입력 2025-06-02 00:1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자사주 소각 의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자사주 보유 규제 분위기가 고조되며 상장사들이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거나 자사주를 매각하고 소각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텔코웨어 최대주주 금한태 대표는 지난달 19일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매수가격은 주당 1만3000원으로 총 233만2438주(지분율 25.24%)를 이달 10일까지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올해 1분기 기준 텔코웨어가 보유한 자사주는 전체 발행주식의 44.11%나 된다. 이를 소각하게 되면 지분 22.43%를 보유하고 있는 금 대표의 경영권이 행동주의 펀드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거래소 규정상 자진상폐를 하려면 최대주주가 지분 95%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공개매수가 성공해도 금 대표의 보유 주식 수는 55.89%에 그친다. 다만 자사주는 자진상폐 지분율을 계산할 때 제외하게 돼 과반이 조금 넘는 지분으로도 상폐가 가능하다. 대선 이후 자사주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선제적으로 외부의 간섭을 덜 받는 비상장사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특히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추진하려는 자본시장법 개정은 비상장사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자사주를 최대주주나 계열사에 매각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 솔루엠은 보유 자사주를 최대주주에 사들인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넘기려다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솔루엠은 해당 사안이 상법상 배임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 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소액주주의 주장대로 소각하기로 지난달 19일 결정했다.

사조대림은 지난달 28일 보유 자사주(4.95%)의 약 절반을 계열사에 넘기기로 했다. 사조대림은 “기업 운영자금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금투업계 관계자들은 “자사주를 계열사에 매각하면 소각을 요구받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호반그룹의 지분 매입 공세를 받는 한진그룹과 LS그룹의 자사주 활용은 규제 방향성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진칼은 지난달 15일 자사주 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다고 공시했다. 다음 날인 16일에는 LS가 한진칼 자회사 대한항공을 상대로 LS 자사주로 바꿀 수 있는 65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두 경우 모두 직접 자사주를 보유하면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세력에 넘겨 최대주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논평을 통해 “한진과 LS의 자사주 활용은 주주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며 “차기 정부에서 상법 개정 필요성을 재부각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