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법관 증원’ 공약을 공식화하면서 법조계에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관 대폭 증원 시 ‘원 벤치(One Bench)’로서 전원합의체 기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사법부 장악 시도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상고심 개편 논의와 맞물려 대법관 1~4명 정도 증원은 반대 명분이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4~2015년 대법관 증원이 아닌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했지만 19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18명으로 늘리고 상고심사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2023년 국회에 입법 의견으로 냈지만 임기 막바지 동력을 얻지 못한 채 좌초했다. 이처럼 법원 차원에서도 대법관 증원을 추진했던 만큼 소폭 증원은 반대 명분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상고심 업무 부담 경감에 대법관 증원이 직관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려하는 쪽은 급격한 증원으로 사법부 독립이 침해될 가능성을 제기한다. 대법관 임용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이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 입김이 반영된다. 실제로 과거 대법원장이 염두에 뒀던 후보자를 대통령이 반대해 제청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 공약집에 구체적인 증원 숫자는 없지만, 김용민 민주당 의원의 1년간 8명씩 총 16명을 늘리는 ‘30명 증원안’이 발의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후보 당선 시 임기 중 사법리스크를 우려한 ‘알박기’ 포석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결국 대법원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또 다른 법관은 “어떤 조직도 현원보다 많은 수를 급격히 증원하진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일선 법관 수를 늘려 1·2심 판결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0명으로 증원 시 대법원 전합 판결로 사회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하는 ‘정책 법원’ 기능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합의 토론과 합의 절차가 현실적으로 단순 표결 절차로 변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관 수 대폭 증원 시 파기환송 비율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는데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꼼꼼히 사건을 검토해 많이 파기하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송사 비용이 늘어나고 고통도 길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대법관 증원 자체에는 찬성한다. 대법원은 현재 심리 불속행 기각 제도를 통해 형사사건 제외 상고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사건은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한다. 변협은 대법관을 증원하고 심리 불속행 기각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