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다가온 '대법관 증원'
장점 있지만 부작용도 많아
사법개혁, 신중히 추진돼야
장점 있지만 부작용도 많아
사법개혁, 신중히 추진돼야
대법원 상고심에서 형사 공판 사건은 2014~2023년 한 해 평균 약 2만2300건 접수되고 처리됐다(2024년 사법연감). 대법원 단계까지 언론사가 톱기사로 다룰 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정치적 형사 사건이 그리 많지는 않다.
최근 1년간 기사를 검색해보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김건희 여사 연루 의혹이 제기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일당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윤미향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등 5건 정도가 꼽힌다. 형사에 민사, 행정 등을 합친 대법원 전체 본안 사건 처리 건수는 한 해 평균 4만2800건 정도다. 사회가 두 쪽으로 나뉘어 치고받는 경향이 강한 정치적 형사 사건 비율은 대법원 전체 본안 사건의 0.01%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대법원은 4만2800건 중 1건인 이 후보에 대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 이후 개혁 대상으로 몰렸다. 이 후보 공약집에는 사법개혁으로 대법관 증원안 등이 포함됐다. 구체적인 숫자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김용민 의원안이 발의돼 있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되고 증원이 현실화하면 대법원 조직과 구성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법원 내부에서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 후보 판결에 적지 않은 의문과 비판이 제기된 건 사실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일관되게 공직선거법 사건의 신속한 선고 원칙을 강조했고, 대선 전 선고와 대선 후로 미루는 두 가지 방안 중 원칙론을 택했다고 선의로 해석하는 쪽도 있다. 하지만 뼈아픈 점은 전합 판결을 사건 접수 후 한 달, 전합 배당 후 9일 만에 선고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후보 사건이 1심에서만 2년2개월이 걸려 비판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대법원의 초고속 판결이 정당화되는지는 의문이다. 국민 관심이 집중된 대형 사건일수록 전례대로 처리해야 뒷말이 나오지 않는 법인데 이런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법원에선 상고심 개편과 대법관 증원 논의가 ‘사법부를 손보겠다’는 의도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물론 상고심 업무 부담 경감을 고려하면 대법관 증원을 마냥 반대하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도 2023년 대법관을 4명 늘리고 상고심사제를 도입하는 안을 추진했다.
역대 여러 대법원장이 상고심 개편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불발됐던 건 그만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민주당 안대로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면 늘어난 대법관들이 그만큼 사건을 꼼꼼하게 볼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통일적 법해석 기능이 약화되고, 파기환송 사건이 대폭 늘어 오히려 법적 분쟁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미 상고심까지 올 필요가 없는 경미한 사건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대법관 대폭 증원은 하급심 재판을 형해화하고 ‘끝까지 가보자’는 인식을 더 부추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집권하든 사법체계 개혁은 장기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진행돼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 견제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수사권한 등을 놓고 혼선과 수사지연을 초래했다. 공수처법 등에는 수사권과 구속 가능 기간에 대한 세밀한 규정이 없었고, 결국 내란 수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연장 불허와 구속취소로 이어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 접수 사건 총 171만건 중 65만건이 기소됐고 54만건이 불기소됐다. 수사 단계에서 국민의 관심을 받는 정치 고발 사건을 크게 100건 정도로 잡는다 해도 전체의 0.01%에 불과하다. 사법체계 개혁은 0.01% 정치 사건을 위한 개혁이 아닌 99.99% 사건이 올바르게 처리되기 위한 논의를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 급격한 사법체계 변화는 결국 법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권력층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나성원 사회부 법조팀장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