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트럼프의 황금열쇠

입력 2025-06-02 00:40

최근 카타르가 수천억원대 비행기 선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카타르 못지않게 트럼프나 그의 행정부도 대내외 인사들한테 줄 선물을 고를 때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 행정부가 레오 14세 교황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J D 밴스 부통령을 특사로 보낼 때 전달한 선물은 소박하지만 교황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선물은 교황 이름이 적힌 미 프로풋볼(NFL) 시카고 베어스 유니폼이었다. 시카고 출신이자 스포츠를 좋아해 자주 경기장을 찾았던 교황을 위해 특별주문한 것이다. 미 정부는 교황의 고향 지인들을 수소문해 뭘 선물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고 이 선물을 결정했다고 한다.

트럼프가 2019년 방일 때 일왕 부부에게 준 선물도 세심함이 돋보였다. 트럼프는 나루히토 일왕에겐 1938년 제작된 비올라를 선물했다. 일왕의 비올라 연주 실력이 프로급인 것을 알고 고른 선물이었다. 마사코 왕비한테는 모교인 하버드대 구내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만년필을 선물해 깜짝 놀라게 했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17년 4월 방미 때엔 노래를 선물했다. 자신의 손주들을 동원해 중국 대표 민요인 ‘모리화’를 시 주석 부부 앞에서 부르게 했다. 트럼프는 그해 11월 방중 때도 이들 부부에게 아이패드에 담아온 손녀의 중국어 노래를 들려줬다.

트럼프가 30일(현지시간) 미국 정부효율부(DOGE)의 실질적 수장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이임 기자회견장에서 황금열쇠를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황금열쇠는 신화나 소설 등에서 중요한 저장고를 열거나, 비밀 장소로 들어갈 수 있는 상징물로 자주 등장한다. 그런 열쇠를 준다는 것은 가장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선물 케이스에는 백악관이 그려져 있어 이 황금열쇠가 언제든 백악관을 편하게 드나들라는 의미를 담은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 해석이 맞다면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와 결별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머스크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물인 셈이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