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권유에 밀려서 준비 없이 장로회신대 신대원 시험을 치렀지만, 뜻밖에도 합격 통지를 받았다. 당시에는 신대원 지원자가 부족해서 거의 모든 응시자를 다 받아주던 때였기에 나도 합격할 수 있었다. ‘내가 신학교에 합격하다니,’ 솔직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시험을 치른 나는 뒤늦게 합격 사실을 연락드렸다.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즉시 대전으로 내려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는 내게 처음으로 서원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네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새벽 기도를 했다. 네가 신학교 합격한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다.” 아버지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려 24년간 지속된 기도 응답에 대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목사가 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길임을 깨닫고, 아버지 앞에서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주님, 정하신 길이라면 순종하겠습니다. 음악을 내려놓고 목사가 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잠잠히 돌아보니, 아버지는 단순히 기도만 하신 것이 아니었다. 아들이 목사가 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나를 어릴 때부터 신앙 훈련을 시키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신약성경을 사다 주시며 읽도록 하셨다. “성모야, 너 한글을 읽을 수 있으니 이제부터 성경을 읽어라. 신약부터 읽으면 좋다”며 권하셨다.
아버지는 내가 성경을 읽으면 돈을 주셨고, 어린 마음에 요한복음까지 꾸준히 읽었다. 이후에는 돈을 주시지 않았지만, 성경에 흥미를 느껴 신약을 모두 읽었다. 이어 구약까지 섭렵하며 성경을 세 번이나 완독했다. 또 아버지는 거의 모든 부흥회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곳에서 병자가 치유되는 신유의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어릴 땐 아버지의 의도를 몰랐지만 기도 속에서 응답을 믿고 내게 신앙 훈련을 시키셨던 것이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등록금 문제가 걱정됐다. 당시 30만원이 넘는 입학금과 등록금 마련은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기적 같은 방법으로 신대원 과정을 마칠 수 있게 하셨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연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
서울대 음대 국악과에서 만난 은사 한만영 교수님이 계셨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었을 때, 한 교수님은 후두암에 걸렸다가 기도원에서 기도하던 중 응답을 받아 기적적으로 암이 치유된 경험이 있으셨다. 교수님은 이후 신실한 신자가 됐다. 그 일을 겪으신 교수님께서는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 성경을 가르쳐 달라 부탁하셨다. 그렇게 학생인 내가 한 학기 내내 교수님에게 성경을 알려드리는 일을 맡았다.
집에서 마련해준 첫 학기 등록금을 내고 신학교 합격 소식을 알릴 겸 한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교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앞으로 3년 동안 등록금을 후원하고 싶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덕분에 나는 3년간의 신대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