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하철 방화… 준비된 시스템과 침착한 대응이 참사 막았다

입력 2025-06-02 01:10
지난달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방화로 인해 승객들이 지하 터널을 통해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화재로 인해 대피하는 승객들의 모습. 연합뉴스

31일 서울지하철 5호선 전동차 안에서 60대 남성이 불을 질러 승객들이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부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범행 수법이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떠올리게 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나 심각한 부상자는 없었다. 대구지하철 참사 이후 위급상황 대비 시스템을 강화했고, 기관사와 승객들이 수칙에 따라 침착하게 대응해 대형 참사를 막았다는 평가다.

불은 오전 8시43분쯤 여의나루역∼마포역 사이 터널 구간을 달리던 열차의 네 번째 칸에서 시작됐다. 피의자는 인화성 물질로 추정되는 액체를 바닥에 뿌리고 옷가지를 이용해 불을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객차가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자 승객들은 다른 칸으로 이동한 뒤 비상개폐장치로 문을 열고 대피했고, 비상통화장치로 기관사에게 상황을 알렸다. 기관사는 차량을 멈춘 후 승객들과 함께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 당국은 브리핑에서 “기관사와 승객의 자체 진화로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고 소방관들이 진입한 당시 상당수 승객이 대피한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또 “객차가 대부분 불연재로 돼 있어 쓰레기만 일부 불에 탔다”고 했다. 과거 전동차 내부엔 우레탄폼, 폴리우레탄 등 가연성 소재가 많았고 이 때문에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전동차는 2∼3분 만에 화마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후 전동차 내장재는 불연·난연성 소재로 교체됐고 덕분에 화재 확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참사 이후 설치된 터널 대피로 안내도, 비상통화장치 등도 도움이 됐다. 다만 화재 당시 열차 내 보안카메라 화면이 관제센터로 실시간 전송되지 않아 역무실이나 도시철도 상황실 등에서 열차 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없었던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22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에선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이번 서울지하철 방화에선 2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다행히 모두 가벼운 부상이었다. 비슷한 범행이었지만 피해 규모에 큰 차이가 생긴 것은 비상 대응 시스템이 강화됐고, 기관사와 승객들이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응한 덕분이다. 준비된 시스템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관계당국은 다른 사고 대응에도 적절한 시스템이 준비돼 있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