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더 강해진 미국의 패권 의지

입력 2025-06-02 00:35

트럼프 행정부 재등장 이후 4개월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국제적으로 큰 우려와 의문을 낳고 있다. 우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훼손과 파괴이고, 의문은 그가 과연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우려와 의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전후 미국의 글로벌 패권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건설 및 유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자신의 이미지대로 주조했다.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의 촉진, 자유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국제기구를 통한 협력의 제도화 등을 주도했다. 동맹국에는 안보와 번영의 기회를 제공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은 지구 전체로 확대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질서의 유지를 위해 미국은 기꺼이 세계의 정원사 역할을 담당했다. 많은 국가가 미국의 이러한 역할에 동의했다. 미국 이익이 세계의 이익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재등장 이후 마주하는 미국은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자유주의적 패권국과는 거리가 있어 매우 생경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지금의 미국은 이기적이고 심지어 약탈적이기까지 하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혹한 정책이나 자의적인 상호관세 부과는 단적인 예다.

미국이 가꿔오던 세계라는 정원은 이제 미국이 정원사의 역할을 방기하면서 점차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글처럼 바뀌고 있다. 미국 자신도 이제 정글의 법칙을 강조하는 듯하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취임 직후 다극 세계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여러 지역에서 여러 강대국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놀랍게도 다극은 그동안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과 서방 주도 질서에 대항하며 강조했던 용어다.

과연 세계는 다극 질서로 회귀하는가. 루비오 장관의 다극 질서 언급은 그 의미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그의 말은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야 하고 러시아, 북한, 이란 등 불량국가도 상대해야 하는데,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상태에서 그 방법이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패권 의지가 사라진 증거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도전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패권을 유지해야겠다는 의도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는 지난주 토요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해 행한 연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유럽 등지에서 동맹국들이 자체 방위 부담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면서 미국의 국방 정책이 중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위협이 실제적이고 가까이 다가왔다고 언급했다. 만약 중국이 현상 변경을 시도한다면 미국은 이에 맞설 것이라 했다. 또 이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을 포함한 만반의 준비를 강조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을 중국에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읽힌다.

글로벌 패권 유지를 위한 트럼프의 새로운 접근법이 실제 패권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할지 아니면 오히려 쇠퇴를 가속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는 장기적 추세의 문제이며 이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전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패권 수호 의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장의 국제정치적 현실이다. 선거를 통해 들어설 새로운 정부는 패권 유지의 의지에 충만한 트럼프 행정부와 상대해야 한다. 아직 다극 질서는 오지 않았다.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