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스스로 데이터 만들고 해법 찾는 ‘경험형AI’ 시대 온다

입력 2025-06-03 00:34

구글 리치 서튼 등 “경험의 시대” 제안
인간이 만든 낡은 데이터서 벗어나
무한 창의성·혁신적 해결책 찾는 것
인간의 지식 한계 넘는 새 시대 기대

인간은 능동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문명을 발전시킨 만물의 영장이다. 그런데 구글 인공지능(AI)의 살아 있는 전설 데이비드 실버와 리치 서튼은 AI도 인간처럼 세상을 직접 체험, 학습하면서 발전하는 ‘경험의 시대(Era of Experience)’를 전망했다. 바둑과 체스에서 인간을 능가한 AI 모델 ‘알파제로(AlphaZero)’ 개발을 주도한 AI 석학들의 선언은 기존의 기술 생태계에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구글판 도발’로 해석되며, 구글의 AI 패권 탈환을 위한 전략적 반격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휴먼 데이터의 한계

실버와 서튼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챗GPT 언어 모델(LLM)은 일회성 채팅에 치중하고, 인간의 낡은 저수지(편견 가득하고 비싼 레이블 데이터)에 갇혀 있어, AI에 의한 새로운 지식과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현재 AI는 진부한 데이터에만 의존해 인간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답습하는 모방형 지능일 뿐 진정한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휴먼 데이터 시대의 종식 및 경험형 AI 시대를 제안한다.

경험의 시대란 사람처럼 현장에서 스스로 경험하는 AI를 통해 이전에 한 번도 만들지 못했던 새로운 데이터를 창조하는 새로운 AI 시대를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만든 낡은 데이터 시대(또한 데이터 부족의 시대)를 종식하자는 도발적 선언이다. 경험형 AI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확장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일반 인공지능(AGI)에 도달할 수 있는 유력한 경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한다.

AI의 발전 단계

인공지능(AI)은 이제 현장에서 스스로 경험하며 스스로 새로운 데이터를 창조하는 ‘경험의 시대’에 진입했다. 사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경험형 AI를 형상화한 이미지. 오른쪽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주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경험형 AI 비서. 필자가 코파일럿으로 생성

첫째, 시뮬레이션 시대는 2010년대 중반이다. AI는 디지털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체스, 포커, 아타리 등을 수백만번의 게임으로 반복 학습했다. 강화 학습(RL) 방법으로 AI가 전략을 최적화하도록 유도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와 알파제로라는 성과를 낳았다. 체스와 바둑에서 새로운 전략을 발견했고, 인간의 게임 방식에도 영향을 줬다. 하지만 챗GPT 언어 모델이 득세하면서 강화학습 기반의 시뮬레이션은 밀려났다.

둘째, 휴먼 데이터 시대다. 2017년 구글의 ‘주의 집중이 필요해(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논문 덕분에 오픈AI 등은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생성형 AI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방대한 휴먼 데이터를 활용해 콘텐츠 제작, 그래픽 디자인, 소프트웨어 코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약했다. 이는 LLM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유한하고 고정된 휴먼 데이터 속에서만 작동하는 낡은 보물창고에 의존한 것이었다. 인간의 편견과 편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낡은 저수지에서 지식을 창출한다는 것은 문제다.

셋째, 스트림 기반 AI 경험의 시대다. 휴먼 데이터 모델은 즉자적·일회성 채팅 구조로 이뤄져 한계가 뚜렷하다. AI가 대화와 정보를 축적하지 못해 지속적인 맥락 학습이 어렵다. 예를 들어 마라톤에 대해 물으면 AI는 아무 생각 없이 흉내만 내는 ‘통계학적 앵무새’처럼 뻔한 답변을 준다. 이와 달리 스트림 기반의 AI는 연속적인 경험의 흐름을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경험을 축적한다. 이 경험형 AI는 마치 마라톤 우승을 위해 일회성 연습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학습하고 지속적인 개선 전략을 실행한다. 효과가 높고,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가령 주인이 “내년엔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어”라고 말하면 AI는 단기적인 운동 계획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훈련·식단 시간표까지 설계하며 목표 달성을 도와주는 동반자가 된다.

어떻게 ‘경험의 시대’를 열 것인가

경험형 AI는 더 이상 고정되고 낡은 인간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 새로운 경험의 축적,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휴먼 데이터의 편향과 뻔한 게임에서 탈출해 실제 세계와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예를 들면 경험형 AI 건강관리 에이전트는 마치 개인 맞춤형 헬스 코치가 24시간 옆에서 함께하는 것과 같다. 더 이상 낡은 데이터만 뒤적거리지 않는다. 스마트워치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수면의 패턴, 심박, 활동량, 식습관을 생생하게 체크한다. 과거 데이터는 참고 자료일 뿐 현재 사용자의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새로운 건강 신호나 이상 징후를 스스로 감지하고, 장기적으로 건강 목표와의 연관성을 학습한다. 예컨대 ‘최근 잦은 야근, 급격한 수면의 질 저하’라는 새로운 패턴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번 주는 휴식이 필요해요”라는 맥락 기반의 조언을 한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자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효과적인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진정한 개인 건강관리 비서로 진화한다.

경험형 AI는 인간을 닮았다. 인간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행동을 바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습 방식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의 낡은 데이터로부터 탈피해 새로운 해법을 찾는다는 점에서 인간을 초월한다. 경험형 AI는 기존 에이전트 AI가 위키피디아나 레딧 같은 과거 데이터를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데이터를 창출한다. 이는 인간이 만든 고정된 데이터보다 훨씬 더 풍부한 정보의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경험형 AI는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박스 밖(Out of the Box)’에서 무한 창의성을 발휘하고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과학적 발견, 혁신적인 치료법, 신약 개발도 가능해질 수 있다.

최근 부각된 추론형 AI인 제미나이, 딥시크 R2, 오픈AI o1 등도 스트림 기반의 경험형 AI에서 빛을 볼 것이다. 기존 모델이 제한된 인간의 언어를 모방하는 데 그친다면 경험형 AI는 스스로 새로운 전략과 지식을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전망이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AI 전쟁이 무르익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새롭게 맞이할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과연 어떤 AI의 세상을 펼쳐갈 것인가.

여현덕 KAIST-NYU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