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처음

입력 2025-06-02 00:33

약속된 일을 하러 가는 길에 시간을 남겨 사전투표를 하러 갔다. 처음 가보는 장소였다. 사전투표도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 투표소 정문 앞에서 투표를 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바깥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기다려주던 사람에게 다가가 금세 끝난다며 강아지의 리드줄을 바통터치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금세 끝났다. 투표에 참여하면서 이렇게나 금세 끝난 경험도 처음이었다.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처음 만나게 된 사람과 사전 미팅을 했다. 1990년대에 출간된 나의 첫 시집과 관련된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시집으로 행사는 처음 해본다. 이 시집을 내용으로 인터뷰를 해보는 것도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다.

나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던 1990년대에는 ‘북토크’라는 말도 ‘낭독회’라는 말도 우리사회에는 없었다. 누군가 해외에서 동네 책방에 몇 안 되는 독자들과 둘러앉아 시 낭독 경험담을 들려줄 때, 해본 적도 없이 오로지 상상만 해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와 만나 소통을 한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의 첫 시집은 그렇게 독자와 직접적으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세월의 저편에 놓여 있었다.

주최 측에도 이번 행사를 첫 시집으로 하자는 제안을 해왔을 때 여러 걱정들이 앞섬에도 불구하고 반색했다. 인터뷰어가 꿈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첫 시집을 출간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이 세상에 나의 시집을 선보일 때의 마음을 한번 더 겪어보고 싶은 욕망에서였다. 엄마가 형을 낳아주는 게 자기 소원이라고 귓속말을 해주었던, 외동이었던 나의 조카가 기억났다. 그 아이의 마음도 비슷했을 것이다. 청년이 된 그 아이는 어쩌면 지금도 이따금 형이 있었으면 할 것이다. 첫 시집을 30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한 번 더 출간하고픈 나의 마음처럼. 그 아이는 그 마음으로 누군가를 형처럼 대할 것이다. 내가 세상의 모든 시집을 첫 시집처럼 대하듯이.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