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영국 런던에서 싱가포르로 향하던 싱가포르항공 여객기가 난기류를 만나 70대 남성이 심장마비로 숨진 아찔한 사고는 뇌리에 남아 있다.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이 켜질 새도 없이 비행기는 요동 치며 3분 만에 1800m를 급강하했다. 좌석에서 튕겨 나간 승객 일부는 척추를 다쳤다. 더 무서운 것은 근래 난기류 경험담이 눈에 띄게 늘었고 인명 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속출한다는 사실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자료를 보면 세계 항공 사고 중 난기류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4년 15%에서 지난해 32%로 높아졌다.
국내 11개 항공사가 국토교통부에 보고한 지난해 난기류 건수는 2만7896건으로 1년 전보다 35.6% 증가했다. 이 중에는 전조 증상 없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서 난데없이 기체가 마구 흔들리는 청천(靑天) 난기류도 다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청천 난기류는 예측도 대응도 어렵다는 점에서 더 큰 피해를 낳는다. 난기류를 중점적으로 연구한 영국 레딩대 교수진은 인류가 현재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50년 이후에는 청천 난기류가 3배 이상 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난기류는 기후위기가 더는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님을, 그것이 인간의 일상적 이동과 안전마저 뒤흔드는 현실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하늘뿐만이 아니다. 지상에서도 기후위기의 징후는 일상처럼 반복된다. 꺼지지 않는 산불, 삽시간에 도시를 마비시키는 게릴라성 집중호우, 치명적으로 길어지는 폭염과 가뭄.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를 넘어 안전, 경제, 안보, 생존을 위협하는 복합위기가 됐다.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 이동하는 길 모든 것이 기후위기와 맞닿아 있다.
이런 가운데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기후위기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사회·경제 문제도 함께 풀어갈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진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을 통합해 기후위기 대응의 일관성과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두겠다는 점은 반가운 시도다.
하지만 현실적인 우려도 상존한다. 새 부처가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치중할 경우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난기류와 같은 기후위기의 다양한 양상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첫째다. 또 과거 많은 정부에서 실패했듯이 기존 부처와의 권한 중복과 정책 충돌, 실질적인 권한·예산 미비 등으로 반쪽짜리 상징적 부처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기후위기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구조, 도시계획, 식량체계, 교통과 소비문화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의 전환을 요구하는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타당하다. 조직 하나 만든다고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조직이 아니라 위기를 직시하는 정책의 방향과 실행의 진정성이다. 기후에너지부는 명확한 정책 목표뿐 아니라 기후위기의 복합성과 불확실성에 대응할 전문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실행력을 높일 권한과 예산, 그리고 정책적 의지를 담보할 사회적 합의가 관건이다. 기후위기는 지금까지 인류가 직면한 어떤 문제보다 어렵다. 난기류의 경고는 항공 안전을 넘어 기후위기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기후에너지부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실험이자 가능성이다. 흔들리는 하늘, 마르는 땅, 끓어오르는 바다. 선거철 공약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가 보내는 준엄한 신호에 응답할 준비가 돼 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김혜원 산업1부 차장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