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현장에서 또다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관리 부실 문제가 터져 나왔다.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2동 투표소에서는 선거사무원이 오후 1시쯤 남편의 신분증을 이용해 대리투표를 하고, 오후 5시쯤 자신의 신분증으로 다시 투표를 시도하다 참관인에게 적발됐다. 30일 경기 김포시와 부천시의 투표 현장에선 투표함에 지난해 22대 총선 때 행사된 투표용지가 1장씩 들어 있는 게 발견됐다. 전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인근에서는 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를 들고 투표소를 벗어난 시민들이 포착돼 부실 관리 논란이 퍼졌다. 관외투표를 위해 줄을 서던 일부 유권자들은 기표 전에 용지를 들고 외부 식사를 한 뒤 다시 투표소에 들어왔는데, 이 과정에서 2차 신분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직선거법상 투표용지를 받으면 즉시 기표해야 하는데도 이를 투표소 밖으로 들고 나가도록 내버려 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선거 관리 부실이다. 3년 전 대선 사전투표 당시 ‘소쿠리·쇼핑백 투표’라는 비판이 나왔던 데 이어 ‘외출 투표’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선관위는 입장문에서 “소수의 선거인이 대기 줄에서 이탈하는 등 대기 중인 선거인에 대한 통제가 완벽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단순 착오나 소수의 일탈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좋은지 심각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 신성한 한표가 존중받지 못할 때 그 결과의 정당성은 물론 전체 민주주의 질서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29일 밤 경남 하동군 선관위에선 한 30대 남성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건물 2층 발코니로 침입하다 체포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명백한 범법행위지만, 이러한 극단적 행동이 벌어진 배경에는 선관위가 반복적으로 자초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선관위는 3년 전 사전투표 부실 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허언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단순한 사과로 넘어가선안 된다. 조직 전반에 걸친 구조적 문제와 제도개혁이 필요하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자 문책이 반드시 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선거는 한 나라의 정치적 건강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이 흐려지면 민주주의가 병들게 된다. 선관위는 더 이상 유권자의 인내와 신뢰를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위해 지금이라도 전면적 쇄신과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