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성장’ 충격에… 한은 “금리 인하 폭 더 커질 것”

입력 2025-05-29 19:03 수정 2025-05-30 00:1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추고, 기준금리도 연 2.75%에서 2.50%로 0.25% 포인트 인하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기존 1.5%에서 0.8%로 크게 낮췄다. 내수 회복 지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수출 둔화 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반영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지자 기준금리를 연 2.5%로 인하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향후 금리 인하 폭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29일 ‘5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제시했다. 지난 2월 전망치(1.5%)를 절반 가까이 낮춰 ‘0%대 성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도 기존 1.8%에서 1.6%로 0.2% 포인트 낮췄다. 2년 연속 1% 성장이 현실화하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3년 이후 처음이 된다.


올해 전망치 하락분 0.7% 포인트 중 절반에 해당하는 0.35% 포인트는 미 관세 정책 영향을 반영한 결과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경제전망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2월 전망 당시보다 미 관세 정책의 강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암울한 건 미 관세 정책이 완화돼도 0%대 성장을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한은이 이번에 제시한 0.8% 성장 전망치는 미국의 기본 관세율(10%), 품목 관세율(25%) 등 관세가 유예된 현 수준을 유지할 때를 가정했다.

한은은 미 관세율이 올해 말까지 상당 폭 인하될 경우(낙관적 시나리오) 성장률 전망치도 내놨는데, 이 경우 올해 0.9%, 내년 1.8%로 각각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대미 협상이 원만히 진행돼 상호관세가 무효화돼도 올해 성장률이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미·중 갈등이 다시 불붙고 미 상호관세가 유예기간 후 절반 정도 다시 높아질 경우(비관적 시나리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0.7%, 1.2%로 각각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한은 전망대로라면 올해 성장률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추락한다. 최근 30년간 한국 경제가 연 1% 미만 성장에 그친 건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4.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 팬데믹(-0.7%) 등 세 번뿐이다. 이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 역성장할 확률이 5% 정도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평균적으로 14%에 이른다”며 “0.8%가 역사적으로 굉장히 힘든 경우는 맞지만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라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한은은 지출 부문별로 봤을 때 성장률을 깎아내린 주원인으로 장기간 이어진 건설경기 침체를 꼽았다. GDP의 14%를 차지하는 건설투자의 올해 성장률 전망은 -6.1%다. 한은은 건설투자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아닌 0%만 기록했어도 올해 성장률이 0.8%에서 1.7%까지 반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내외 여건 악화 속에 한은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금통위원 만장일치로 3개월 만에 연 2.75%에서 2.5%로 0.25% 포인트 인하했다. 인하 폭이 더 커질 가능성도 내비쳤다. 지난 2월 금리 인하 후 연내 한두 차례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이보다 인하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를 뺀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3개월 내 2.50%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당초 예상보다 성장세가 크게 약화돼 금리 인하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빅컷’(0.5% 포인트 인하) 기대에는 선을 그었다. 금리를 너무 빨리 낮추면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이미 2.5%로 낮췄고 추가로 더 인하한다면 유동성 상황이 긴축적인 상황이 아니어서 자산가격을 더 올릴 가능성이 있지 않나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금리를 너무 많이 빨리 낮춰서 유동성을 더 공급하게 되면 (자금이) 경기 부양보다 주택가격 같은 자산으로 흘러들어가 코로나19 때 했던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도 굉장히 크다”고 덧붙였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