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비결은 원칙과 존중… 누구나 오고 싶은 팀 만들겠다”

입력 2025-06-02 02:31
조상현 창원 LG 감독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 감독은 강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을 이끌며 LG를 창단 28년 만에 처음으로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올려놨다. 김지훈 기자

1997년 프로농구 KBL 출범과 맞물려 창단한 창원 LG 세이커스는 올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28년 만에 ‘무관의 한’을 풀었다. 매번 정상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2위 징크스에 시달리던 LG의 체질을 바꾼 건 조상현 감독이었다. 3년 전 LG 지휘봉을 잡은 그는 선수단 운용에 있어 명확하고 일관된 ‘원칙’을 세웠다. 팀 규율에 벗어나는 행동은 용납지 않으면서도 지도자와 선수를 무조건적인 수직 관계로 설정한 것도 아니었다.

조 감독은 “‘원 팀’을 이루려면 무언가 큰 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훈련 때만큼은 기본적인 규율을 지키자고 강조했고,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다”며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 존중을 바탕으로 신뢰하다 보니 특별한 소통 방법 없이도 하나로 뭉친 것 같다. 선수와 감독이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게 진정한 프로의 세계라는 신념이 있었다”고 말했다.

LG는 최종 7차전 혈투 끝에 챔프전 왕좌에 올랐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정규리그에선 한때 8연패를 당하고 9위까지 추락했다가 2위로 올라섰다. 비시즌 트레이드로 영입한 베테랑 두경민과 전성현, 외국인 선수 아셈 마레이의 부상이 겹치면서 조 감독의 시즌 구상은 모조리 흔들렸다. 챔프전 역시 다이내믹했다. 시리즈 3연승을 선점하고도 3연패를 당해 위기에 몰렸다가 극적 우승을 일궈냈다.

조상현(가운데) 창원 LG 감독이 지난달 17일 2024-2025 프로농구 KBL 챔피언결정전 최종 7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눈물을 흘리며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KBL 제공

조 감독은 지난달 29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우승 후 만감이 교차했다. 준비했던 선수 구성이 빗나가면서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짰는데, 모두가 코트에서 자신의 가치를 잘 보여줘서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고 보니 스포츠는 영원한 게 없고, 작은 방심이나 분위기 싸움에서 승패가 갈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개인적으로는 지도자로서 많이 배운 시즌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조 감독은 김승기 전 고양 소노 감독과 전희철 서울 SK 감독에 이어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역대 세 번째 사령탑이 됐다. SK 신인 시절이던 1999-2000시즌, 고양 오리온스 코치였던 2015-2016시즌 정상을 밟았다. 같은 우승이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선수 시절엔 좋은 동료들을 만나 멋모르고 우승했고, 코치 시절에는 조력자였다. 이번엔 리더로서 선수단을 만들어가며 우승해 더욱 뜻깊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LG를 세 시즌 연속 리그 최소 실점을 달성한 ‘짠물 수비’의 팀으로 만들었다. 현역 시절 정상급 슈터로 활약했던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수비를 강조한 건 아니었다. 매일 같이 체육관에 살다시피 하며 팀 분석에 매달린 끝에 입힌 새 옷이었다.

조 감독은 “팀 중심인 마레이는 득점력보다 수비 능력이 좋아 공수에서 안정적으로 활약할 선수라 판단했다. 압박 수비가 허용되는 현대 농구의 흐름도 하나의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은 경기 상황이나 선수 능력에 따라 업다운이 있을 수 있다. 수비는 선수들의 의지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린다”며 “선수들이 수비 지시를 잘 이행했지만, 잘못했을 때는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조 감독은 정해진 운동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명료한 원칙을 세웠다. 훈련에 늦거나 설렁설렁 뛰는 선수들까지 억지로 끌고 간다는 생각은 없었다.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프로다운 자세를 바랐다. 또 훈련 때만큼은 감독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팀 규율을 벗어나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게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선수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했다. 훈련 외적인 부분이나 사생활은 간섭하지 않으려고 했다.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은 주장 허일영은 든든한 우승 조력자였다. 불혹의 노장이 된 허일영은 올 시즌 식스맨을 맡아 출전시간이 줄었지만 챔프전 최종전에서 3점포를 연거푸 꽂는 활약으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긴 시즌을 치르는 동안 조 감독과 때때로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다.

조 감독은 “솔직히 허일영은 4강 플레이오프 때 거의 못 뛰었는데도 몸 상태를 꾸준히 유지했다. 결정적 순간에 찾아온 기회를 잡았고, 본인의 능력을 증명했다”며 “경기에 질 때도 후배 선수들을 계속 다독이며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으로서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LG는 2001년생 트리오로 활약한 유기상과 양준석, 칼 타마요의 고속 성장으로 향후 팀의 미래를 밝혔다. 한 차례 은퇴 이력이 있는 포워드 정인덕을 재발견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유기상과 양준석은 최근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고, 정인덕은 대표팀 예비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국가대표 사령탑을 지냈던 조 감독은 “각자 스스로 성장해서 이룬 결과물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선수들이 되길 바란다”며 “소속팀에서 우승을 해냈듯이 대표팀에서도 다양한 훈련이나 플레이 방법을 잘 배워오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우승 사령탑이 됐지만 조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그는 “배움에는 끝이 없지 않나.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멋쩍어 했다. 한 시즌을 마친 프로농구에선 이미 10개 중 5개 구단의 사령탑이 교체됐다. 차기 시즌에는 더욱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조 감독은 “올 시즌 우리 팀이 수비로 빛을 봤지만 속공이 약했다. 공격에서 4~5점 정도 더 넣는 농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꿈꾸는 창원 LG의 모습은 ‘모든 선수들이 뛰고 싶어 하는 팀’이다.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왕조 건설보다는 언제나 상위권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강팀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 감독은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가 선배를 따라가는 건강한 운동 문화가 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며 “장차 프로에 데뷔할 선수들이 오고 싶은 팀, 다른 팀에 몸담았던 자유계약(FA) 선수들이 오고 싶은 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열광적인 응원으로 소문난 ‘세바라기’(세이커스 바라기) 팬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조 감독은 “제가 ‘이런 큰 사랑을 받아도 될까’라는 생각과 감사함에 우승하고 정말 많이 울었다. 창원과 서울을 오가며 원정을 홈처럼 만들어 주신 팬들 덕분에 감독으로서 더욱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됐다”며 “더욱 즐거운 농구로 보답하는 게 저의 숙제인 것 같다. 더욱 멋진 팀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