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외교 수장들이 모인 국제 포럼에서 차기 정부가 ‘자립형 한·미 동맹’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들은 새 정부 외교 정책의 핵심 과제로 대립적 미·중 관계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스탠스를 설정하는 일을 들었다.
노무현정부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장관은 29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회 제주포럼에서 “미국에 과하게 의존하는 ‘의존형 동맹’을 ‘자립형 동맹’으로 바꿔야 한다”며 “그것이 미국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가면) 미국과 격리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심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과제”라며 “한반도 핵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정부 때의 김성환 전 장관도 “미국이 지금 취하는 태도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공공재 공급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미국이 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되 한국의 외교적 자립성도 키워야 한다는 취지다.
박근혜정부에서 일한 윤병세 전 장관은 “외교 난제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찾아온다”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없는 새 정부가 얼마나 복합적으로 속도감 있게 대미 외교 전략을 수행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교 장관들은 차기 정부가 미·중 관계의 방향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장관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지정학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외교적 과제가 될 것”이라며 “이미 주어진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그다음을 어떻게 가져갈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윤 전 장관은 “미국이 (중국 견제에) 힘이 부치니 아시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서 주한미군 역할과 성격, 활동 범위가 바뀌는 문제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주한미군 일부가 괌 등에 재배치돼 중국을 견제하고, 대북 재래식 방어는 한국이 주도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김 전 장관은 “당분간 어떤 정책을 해도 남북이 관계를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 완화 조치를 해야 하는데, 한·미 대화가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북·러 협력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북·미 협상 전망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북·중·러가 동시다발적으로 핵 위협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한·미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제주=박준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