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막힌 관세전쟁… 품목별 관세로 정밀타격하나

입력 2025-05-29 18:55 수정 2025-05-29 19: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일(현지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주요 교역국들에 매긴 상호관세를 발표하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일주일 뒤 상호관세를 발효했다가 13시간 만에 ‘90일간 유예’로 후퇴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법원이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위법하다고 판결했지만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은 작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항소법원에 즉각 항소했고, 백악관은 “사법 쿠데타가 통제 불능 상태”라며 법원을 비난했다. AP통신은 “백악관이 이번 판결로 모든 비상권한에 따른 관세를 일시 중단할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이날 법원 판결 직후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약속했으며 행정부는 이 위기에 대응하고 미국의 위대함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행정 권한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1심 판결에도 트럼프가 법원을 우회할 수단은 있다. 항소 외에도 법원 판결에 대해 긴급 집행정지를 신청하거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아닌 다른 법적 근거로 대체 관세를 부과하는 절차도 거론되고 있다.

다만 IEEPA가 아닌 다른 법률로는 상호관세와 같은 전면적인 관세를 도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폴리티코는 “애초에 (트럼프 행정부가) IEEPA를 사용하려고 한 이유는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방대하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전문가 견해를 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품목별 관세를 확대하는 방안이 우선 주목받는다. 이번 판결은 IEEPA를 근거로 부과한 관세에 대해서만 효력을 무효화했다. 이미 시행 중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의 품목별 관세는 여전히 효력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대신 품목별 관세를 대폭 확대해 관세 정책을 실질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트럼프는 이미 반도체와 의약품, 목재 등에 대해서도 품목별 관세를 예고한 상태다.

다만 품목별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되는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은 상무부나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상호관세처럼 즉각적으로 광범위하게 발동하기는 어렵다.

무역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 부과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무역법 122조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부과할 수 있는 관세율은 최대 15%, 부과 기간도 최대 150일로 제한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사법부 간 갈등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의회를 우회하는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 이민자 추방을 비롯한 핵심 정책들을 추진해 왔는데 법원이 여러 차례 이를 막아섰다. 이번에 트럼프 경제 정책의 뼈대인 관세마저 법원이 가로막으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사법부 공격은 더욱 거칠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이미 캘리포니아주 등 여러 곳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문제 삼은 유사 소송이 여러 건 제기돼 있다. 트럼프가 ‘미국 해방의 날’이라고 부를 만큼 자신만만했던 상호관세 도입은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