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릉 바닷가에서 연극배우 박정자(83)의 생전 장례식이 있었다. 영화제작의 일환으로 펼쳐진 퍼포먼스였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것은 박정자가 작성한 부고장이었다. “나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당신은 우는 대신 웃어야 합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마지막으로 들었던 나의 목소리를, 내가 좋아했던 대사를,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강부자, 양희경, 소리꾼 장사익 등 문화계 인사 150명이 문상객으로 참석했다. 꽃무늬 드레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나타난 박정자는 자신의 상여 행렬을 이끌며 춤을 췄다.
서길수(81) 전 서경대 교수는 생전 장례식을 네 차례나 열었다. 은퇴 이후 책을 내면 출판기념회를 겸해 생전 장례식을 갖기로 했는데, 책을 4권 내는 바람에 자신의 초상을 4번 치렀다. 장례식의 메인 이벤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서 전 교수의 강연이다.
일본에는 생전 장례식이 확산되고 있다. 1993년 TV로 생중계된 여배우 미즈노에 다키코의 생전 장례식이 계기였다. 참의원을 지낸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도 작고하기 5년 전인 75세에 체육관에서 이별 파티 형태의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 신문광고로 자신의 말기암과 생전 장례식을 알리는 기업인도 있었다.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고, 인생을 돌아보는 엔딩노트를 쓰고, 재산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생의 마무리 활동’을 의미하는 ‘슈카쓰(終活)’ 시장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생전 장례식의 공통된 키워드는 ‘웃음’과 ‘축복’, ‘감사’다. 유방암 조기 발견을 돕는 자선 단체 ‘코파필’을 세운 영국인 크리스 할렌가는 자신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23년 생전 장례식을 치렀는데 장례식 이름이 ‘FUN-eral’이었다. 초대받은 문상객들은 할렌가의 바람처럼 ‘유쾌한 장례식’을 즐겼다고 한다. 생전 장례식이 보편화되면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뀔 것 같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