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별과 바람과 숲, 그리고 스크린 잔치.’ 우리나라 대표 산간지역 중의 하나인 전북 무주에선 해마다 6월이면 ‘영화 소풍’이 시작된다. ‘무주산골영화제’다. 2013년부터 12년을 올곧게 이어온 이 영화제는 우리나라 야외 영화제의 효시이자, 자부심이다. 이 영화제는 무주의 청정 대자연속에서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지는 작은 축제다. 군민이 2만 3000여명인 이 고장에 3∼5일새 지역 인구 보다 많은 3만5000여명의 관람객이 모이며 무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덕유산 품에서 휴식 휴양 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는 군 단위 지자체가 만든 첫 영화제다. 2013년 50여 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영화제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무주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소풍을 즐기자’는 콘셉트로 시작됐다. 초기엔 관객 유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제와 무주의 매력이 서서히 알려지고 지자체장의 비전과 노력이 합세하며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
매년 선보이는 영화는 80~100여 편. 지난 12년간 모두 110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그 사이 ‘초여름의 낭만 영화제’ ‘힙스터들의 성지’ 같은 별칭이 붙었다. 또 여러 지역에 각자의 색깔을 가진 중소 영화제들이 생겨났다.
황인홍 무주산골영화제 조직위원장(무주군수)은 “우리 영화제는 ‘자연특별시’ 무주의 맑고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한민국 유일의 휴식 휴양 영화제”라며 “인구가 줄고 문화 혜택도 적은 우리 지역에 큰 활력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무주가 가장 젊어지는 시간
무주산골영화제는 야외 프로그램과 실내 프로그램으로 이뤄진다. 야외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동장으로 꼽히는 ‘무주등나무운동장’과 가장 낭만적인 야외 상영장으로 불리는 ‘덕유산국립공원 대집회장’에서 이뤄진다. 주 무대인 무주등나무운동장에선 개막작과 무성영화 상영, 연주와 공연, 토크쇼 등의 이벤트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
영화제의 큰 특징은 전체 관객의 80%가 외지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20~30대 젊은이가 대다수다.
오해동 무주군 기획조정실장은 “영화제 기간은 무주가 가장 젊어지는 시기”라며 “전국의 청년 관객들이 찾아오면서 인구의 38% 이상이 노인인 우리 지역에 에너지가 생기고 생활 인구 확대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관객들이 이틀 이상 숙박한다는 점이다. 무주군은 이들이 쓰고 가는 비용이 한 해 179억원 정도라고 보고 있다. 유료 관객 수도 1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는 부산, 전주, 부천에 이어 국내 영화제 가운데 4번째로 많은 숫자다.
6∼8일 13번째 스크린 여행 떠나
무주산골영화제는 이달 6∼8일 13번째 소풍(포스터)을 떠난다. 올해 행사는 ‘양보다 질’에 충실, 행사 기간을 5일에서 3일로 줄였다. 상영작은 18개국 86편이다. 초보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각 섹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실내상영과 야외상영 프로그램으로 구분했다.
실내 프로그램은 영화 중심, 야외 프로그램은 공간 중심이다. 한국 영화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 감독 특집 ‘넥스트 시네아스트’와 ‘디렉터즈 포커스’를 새롭게 시작한다.
조지훈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예년 대비 상영 편수는 줄었지만 영화마다 세심하고 다양한 기획을 더해 단순한 관람 이상의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년 전 큰 반향을 일으킨 ‘모든 먹거리 1만원 이하’ 체계도 그대로 운영된다. 특히 간식부스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수익금의 일부를 무주군교육발전장학재단에 기부한다.
유기하 영화제 집행위원장 인터뷰
“군 인구보다 많은 관객 찾아… 영화제는 무주의 미래”
“군 인구보다 많은 관객 찾아… 영화제는 무주의 미래”
“우리 영화제는 ‘무주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먼 길 찾아와 재밌게 놀고 가시는 관객들이 주인공입니다.”
유기하(사진) 무주산골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각한 산골에 영화제가 젊은 에너지를 공급하고 나아가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일 제13회 영화제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바쁜 유 위원장은 “(우리 영화제는) 콘크리트 빌딩 속의 닫힌 공간이 아니라 깨끗한 숲·밤하늘, 별과 바람 속에서 즐기는 대체불가의 특별한 영화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주MBC 보도국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으로 13년 전 이 영화제를 만든 산파다. 3회 때부터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시 무주엔 변변한 영화관 하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산골에서 영화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컸죠.”
유 위원장은 “그러나 지금은 전체 군 인구를 훌쩍 넘는 관객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무주읍을 가로지르는 남대천 일대를 청춘남녀들이 영화제 필수품인 돗자리를 끼고 오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엔 군민들에게 영화제가 어떤 의미·이익이 있느냐 하는 거리감이 있었죠. 또 메르스 사태와 코로나19로 인해 중단 위기도 겪었습니다.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행히 나날이 브랜드 파워와 티켓 파워가 뚜렷해졌다”며 “관객이 꾸준히 늘고 그들의 소비로 지역경제에도 긍정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유 위원장은 “영화제가 알차게 성장해서 아름다운 자연이 도시보다 더 큰 자산이 되고 맑은 숲·밤하늘 아래 편안하게 즐기는 영화 한 편이 우리를 얼마나 맑게 해주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무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