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달콤한 주 4일제

입력 2025-05-30 00:37

올해 초 한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웠다. 준공식 다음 날 프로젝트를 총괄한 공장장을 만났다. 공장장은 직원 채용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했다. 한 미국 청년이 공장에 지원했다. 면접 자리에서 청년은 물었다. “재택근무가 가능할까요.” 공장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사무실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벽돌을 나를 순 없는 노릇이다. 이 사실을 그 청년도 모를 리 없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대부분 기업이 재택근무를 채택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장점도 많았다. 출퇴근하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상사나 동료에게 쏟는 시간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이들도 있다. 전 세계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근무하며 생산성을 따져보는 사회실험을 꽤 오랜 시간 했다. 만족스러웠던 회사는 엔데믹 이후에도 적용했을 텐데 대부분은 철회했다.

한국 사회에 주 4일제가 도입되면 어떨까. 찬성론자들은 여가시간 확대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줄여야 할 건 근무 일수가 아니라 일의 양이다. 5일간 해야 할 일을 4일에 구겨 넣는 걸 삶의 질 향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영국 마케팅회사 루멘 SEO의 창립자 알레드 넬메스는 주 4일 3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다 주 7일 동안 유연하게 32시간 일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 뒤 직원 만족도, 업무 성과, 워킹맘을 비롯한 인재 지원 등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전했다. 2022년 영국에서 61개 기업이 6개월간 주 4일제를 실험했다. 직원 스트레스는 줄고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아 시범 운영이 끝난 뒤에도 56개 기업이 계속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대부분 직원 수 10~50명의 중소기업이 대상이었다. 근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운영을 간소화하고, 관리 부담을 줄이고, 업무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등 시스템을 대폭 개편할 수 있었던 건 몸집이 크지 않아서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벤저민 레이커 교수는 “근무일을 줄이면서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업무 방식과 조직 구조를 재설계하는 상당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혁신에 성공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독일 이포 경제연구소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은 고령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주 4일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노동 공급이 줄어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고 이는 소득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고령인구는 증가하는데 연금이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복지 재정에 부담을 줘 심각한 재정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2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고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잠재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2041년부터 역성장에 돌입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주자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일제히 주 4일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적게 일하고 똑같이 벌 수 있다”는 달콤한 말은 늘 선거철에 나온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근무일 단축이 아니라 경제 전반에 끼칠 복합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임금 감소 없는 주 4일제가 가능하긴 한 걸까. 이걸 정부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 한 번 도입하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되돌릴 수 있을까. 이렇게 구구절절 적었지만 우리 회사가 주 4일제를 도입한다면 나는 찬성표를 던질 거다. 이러니 선거 때마다 주 4일제 공약이 안 나올 수가 있나.

이용상 산업2부 차장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