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고령화 대선

입력 2025-05-31 00:39

지난해부터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생) 954만명의 은퇴가 시작됐다. 한국에서 단일 인구 기준으로 가장 많은 세대다. 현행 60세 정년이 유지되면 이들의 은퇴는 9년간 계속된다. 이미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 705만명의 은퇴는 완료됐다.

쏟아지는 은퇴자들이 재취업에 나서면서 한국의 고령층 고용률은 세계 최상위권으로 올라섰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고용률은 3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OECD 평균(13.6%)은 물론 일본(25.3%)마저 앞질렀다.

고용시장만의 일은 아니다. 정치권도 보수, 진보 구분 없이 고령화 흐름을 걷고 있다. 앞서 본보 팩트체크팀은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의원 167명의 학생운동 이력을 전수조사해 보도했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386세대 운동권 특권정치’ 발언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1980·90년대 학생운동을 한 민주당 의원은 10명 중 4명(38.9%), 86세대 범주인 1960년대생·1980년대 학번 의원은 10명 중 3명(29.3%)으로 확인됐다.

올해도 정치권이 한 살을 더 먹었을 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386이든 베이비부머든 이들 세대는 정치권 핵심에 있다. 64년생인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32세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30년 정치를 했다.

운동권 선배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51년생이다. 85년생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있지만 이 세대를 현 정치 지형의 주류로 보긴 어렵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에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은 피터지게 싸우던 거대 양당 원내대표가 국민연금 개혁안에 나란히 서명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말부터 국회는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을 핑계로 사실상 일손을 놨다.

티메프 사태 이후 이커머스 정산 기한을 20일로 단축하는 법안부터 배터리 등 핵심 산업 지원법 논의까지 모두 올스톱됐다.

그랬던 정치권이 ‘(젊은층은) 더 내고 (고령층은) 더 받는’ 국민연금 개혁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맞대며 합의문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21대 대선은 복지는 늘리고 재정은 쏟아붓는 공약 일색이다. 이름만 가리면 어느 후보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취임 즉시 30조원 추가경정예산 편성, 기초연금 인상, 생애주기별 소득보장체계 구축 등 재정지출 확대에는 이념도 여야도 없다. 아동수당 확대, 청년수당 도입 등 생색 공약을 끼워넣었지만 젊은세대 입장에선 ‘내돈내산’이다.

물론 안 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 성장동력을 살리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느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0.8%로 낮추면서 “재정지출 추가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의 낡은 경제·사회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은 채 재정지출만 늘리는 건 성장효과가 적고 나라살림 적자만 커진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고령화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선 최근 ‘전 국민 현금 지급안’이 철퇴를 맞았다.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이 미국 관세 및 물가 인상을 이유로 모든 국민에게 1인당 3만~5만엔(약 30만~50만원)을 지급하려 했지만 반대 여론에 좌초됐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선거 목적의 퍼주기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한다.

병이나 장애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수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고령화 대선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삶의 기반이 취약한 고령층에 대한 지원은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이 같은 돈 풀기 복지로는 고령층 지원보다 재정 고갈 속도가 더 빠를지 모른다. 미래세대가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나라에서 기존 복지체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달 2만명 넘는 아기들이 태어나며 출생아 수가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 아이들이 성인이 돼 투표권을 얻었을 때 어떤 나라를 보여줄 수 있을까.

6월 3일 투표장에서 진보든 보수든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후보에게 한 표를 주고 싶은데, 눈을 아무리 비벼도 보이지 않는다.


앙민철 경제부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