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에서 출간된 책은 방대하고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노예제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한 역사·사회학의 명저로 꼽힌다. 고대 그리스·로마부터 미국 남부의 노예제까지 66개 노예제 사회를 비교하며 노예제의 구조와 작동방식을 분석했다. 특히 전 세계적인 노예제의 맥락과 구조 속에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노비제도 다룬다. 노예제의 본질을 짚는 핵심 개념인 ‘사회적 죽음’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사회적 죽음은 노예가 단순히 자유를 박탈당한 노동자가 아니라 혈통, 지위, 소속 등 사회적 관계망에서 완전히 제거된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노예제가 자유의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흥미로운 주장도 내놓는다. 저자는 노예제가 생기기 전, 사람들은 자유라는 개념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노예제의 등장과 함께 자유를 언급하는 것이 필수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출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불행하게도 그 자유라는 개념을 선점한 것은 노예가 아니라 소유주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서구사회 자유체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 19세기까지 노예제가 유지된 이유라고 꼬집는다.
맹경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