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휴일] 꽃밭에서

입력 2025-05-30 00:10

춥고 어두운 골목 같던 내 스물을 나는
불행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 골목 끝에 벌들이 잉잉대는 꽃밭이 있었으니까.
그 골목을 지나 나는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에 나와 나는 더 많은 상처와 아품을 얻었지만.

한숨과 탄식으로 얼룩졌던 내 서른을
나는 슬펐다고 탄식하지는 않는다.
한숨과 탄식을 달래주는 너의 환한 웃음이 있었으니까.
그 웃음을 타고 나는 세상을 돌아다녔다.
너무 많은 것을 얻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은 부끄러워하면서.

마흔 쉰 예순 일흔……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았다.
빼앗기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았다.
꽃밭에 와 서니 대낮에도 별이 보인다.
내가 살아온 길이 환히 보인다.

-신경림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