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시미즈 선생을 따라 나카노역으로 갔다. 선생이 안내한 곳은 요샛말로 ‘불멍’하기 좋은 로바타야키 식당이었다. 오각형 바가 있었고, 중앙에 커다란 숯불 화로가 놓여 있었다. 요리사들이 제철 생선이나 꼬치에 꿴 고기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전통 민요가 흘러나와 마치 일본의 오래된 민가에 놀러 온 것 같았다.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민요를 듣다 보니 마음이 느긋해졌다. 내가 다섯 살쯤이었나. 어른들이 모내기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와 비슷했다. 못줄을 옮길 때마다 한 사람이 “어럴럴럴 모를 심자, 쏘삭쏘삭 심자”라고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노래를 받아 따라 불렀다. 나는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거나 개구리를 잡으며, 모내기가 끝나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들판에 울려 퍼졌던 구성진 가락이 어쩐지 쓸쓸하게 들려왔다.
이제는 전통문화 체험 행사 때나 볼 수 있을까. 돌아보면 시골에 살았던 덕에 드문 경험을 한 셈이다. 고된 노동을 한 소절의 노랫가락으로 덜어보고자 하는 지혜, 그 공생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구닥다리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냐고 묻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된 것을 구시대의 고물인 양 치부해 버리는 것은 얼마나 게으르고 편한 생각인가.
호기심이 들어 일본 민요를 검색했다. 홋카이도 어부들이 부르는 노래, 소란 부시(ソ ラン節)는 일본인에게 널리 알려진 민요다. 통영 뱃노래 중 “어기여차 어야디야”와 같이 “도코이쇼, 도쿄이쇼(ドッコイショ)”라는 추임새가 반복되어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흥을 돋운다.
문득 아버지의 종아리에 붙어 있던 시커먼 거머리도 떠오른다. 피를 양껏 빨아 통통해진 거머리는 잡아떼려고 해도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담뱃불을 갖다 대면 그제야 툭 떨어졌다. 종아리에 푸른 힘줄이 불거지던 아버지. 젊은 날, 내 아버지의 까마득한 노래여.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