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재정경제부 복지예산과장이던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처음 만났다. 경제부처 출입한 지 한 달도 안 된 기자에게 신빈곤층 개념을 한 시간 넘게 침을 튀기며 열심히 설명하던 열정적인 모습은 복지부동만 떠올리던 공무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술 한 잔에 얼굴이 벌게지면서도 그는 공무원 시절 ‘마당발’로 유명했다. 그런 그를 보며 주변에서는 “정치하면 잘할 것”이라는 말이 많았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에서 요직을 맡을 당시 안 의원의 별명은 ‘또걸’. 서울 서초동의 한 갈빗집에서 매일같이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 소통해 ‘또 도걸이 왔다’는 뜻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기획재정부 2차관을 마치고 정치에 입문, 2024년 광주 동구남구을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안 의원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 부본장, 잘사니즘위원회 산업위기지역살리기위원회 위원장, 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으며 전국 팔도를 누비고 있다. 자타공인 ‘예산통’인 안 의원을 2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국가 재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재정은 정책수단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적극 재정이 그야말로 필요할 때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재 경기 사이클상 경기 침체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빨리 정상 궤도로 회복시켜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뛰어넘을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선 재정 역할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해서다. 글로벌 기술 산업 패권 전쟁이 불이 붙었다. 미래 혁신 산업 분야에서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업 투자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마중물 투자를 해줘야 한다. 재정 적자 수지를 맞추는 것은 그다음 일이다.”
-신성장동력은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하나.
“단연코 인공지능(AI)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인프라 보강 측면에서 국가가 관여를 많이 해야 한다. 100조원 정도의 대대적 투자가 필요하지만, 고위험 분야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가칭 국가혁신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 가장 문제는 저성장 리스크다.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나. 0%대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인구마저 줄어드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금이 마지막 골드타임이다.”
-나랏빚이 커지면 국가 신용도 위험해지지 않나.
“아직 한국의 재정 투자 여력은 있다. 부채비율도 선진국 절반 이하 수준이다. 또 국민연금에 1200조원의 투자재원이 있다. 지금 마땅한 국내 투자처를 찾지 못해 해외 투자하지 않느냐. 대기업도 현금 가용 재원이 1000조원정도 된다. 이런 시중 여유자금을 생산적 분야로 전화시키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곧바로 해야 할 것 같다. 경기와 투자심리가 많이 얼어붙어 있다. 추경을 집행해서 긴급한 곳에 돈이 돌게 해야 한다. 벤처나 창업 부문에도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사회 기풍도 조성해야 한다.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채무경감 조치도 필요하다. 현재는 채무 상환 이연을 하고 대출 금리만 낮춰주고 있는데, 재기가 가능한 분들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빚을 탕감을 해줘서 다시 도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기업하기 더 어려운 나라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들이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 가지고 그러는 거 같은데 민주당은 반기업이 아닌 실용적인 정당이다. 실용은 사안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것을 잘 조정하고 타협해가는 것이다. 상법개정 문제도 재계와 끝장 토론하지 않았나. 당시 경제단체들과 대화하면서 기업인들이 이 후보에 대해 놀라더라. 실상을 잘 알고 있고,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이런 문제일수록 중립·객관적인 입장에서 답 내려야 하는데 (이 후보는) 그런 능력이 충분하다. 기업들 안심해도 된다.”
-‘기재부 쪼개기’ 등 정부조직개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재부는 저출산, 에너지, 수도권 집중 문제 등 국가적 과제의 중장기적 방향을 설정하고, 관련 부처들과 정책 수단 종합해서 패키지화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지금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장기적 성장 방향 제시하고 구조적 이슈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문제 해결사 역할이 필요한데 현재의 기재부는 예산, 조세, 공공기관 관리, 정책 조정권을 갖고 군림만 하고 있다. 기재부를 슬림화해 전략과 예산기능을 따로 떼어내는 게 맞다고 본다. 그리고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권은 부처에 내려주면 된다.”
-해보니 관료와 정치 둘 중 무엇이 더 쉬운 것 같나.
“둘 다 어렵다. 정치가 어려운 건 어젠다 세팅 같다. 정책 방향과 궤도를 설정하는 게 정치인데 그 과정에서 각각 생각이 다르고 여러 리스크가 있다. 정치가 정한 것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행정이다. 공무원이 일할 수 있도록 전문성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정치권과 감사원 등의 과도한 개입이다. 특히 정책 감사는 공무원을 위축시킨다. 정책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데, 획일적인 기준 가지고 감사원이 행정부를 재단하는 것은 안된다. 공무원이 위축돼있으니 적극 행정 못하고 복지부동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족쇄를 푸는 일이 시급하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약력▲1965년생 ▲광주동신고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행정고시 33회 ▲기획예산처 제도관리과장 ▲대통령비서실 서민정책비서관실 선임행정관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총괄심의관, 예산실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제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성규 산업1부장 정리=임송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