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즐기는 것으로만 알았다. 그저 아름다워서, 그저 피었기에 바라보는 존재였다. 책을 읽으며 꽃을 ‘공부’한 뒤에는 꽃은 “알게 된 만큼” 다르게 보였다. 저자는 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꽃을 단지 인테리어 소품이나 볼거리 정도로만 여기지 않고 그 이름을 불러 주며 저마다 꽃이 지닌 사연을 들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꽃의 자서전이다.” 책에는 29종의 꽃에 대한 다양한 문화적, 과학적 사연이 담겨 있다.
이른 봄꽃의 대명사인 수선화의 사연을 들어보자. 수선화의 속명(屬名)은 ‘나르키수스’다.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나르키소스는 숲의 요정 ‘에코’의 구애를 외면한 죄로 보복의 여신 ‘네메시스’가 내린 벌을 받아 평생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죽어서 ‘수선화’가 된다. 수선화는 어떻게 지독한 자기애의 상징이 됐을까. 여기에는 과학적 사연이 숨어 있다. 원래 ‘나르키소스’는 ‘무감각’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수선화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독성 물질인 알칼로이드를 갖고 있다. 수선화 알뿌리를 먹었다간 해를 입을 수 있고, 수선화 꽃줄기를 함께 물에 담그면 다른 꽃들이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수선화의 독성은 신화 속에서 지독한 자기애에 빠져 주변의 관심을 모두 거부한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고 설명한다.
1억년 전 공룡이 살던 시기에 등장한 난초류는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하거나 다른 종으로 대체되는 동안 산과 습지, 나무 위나 바위틈, 초원이나 우림을 가리지 않고 번성했다. 현재 전 세계 2만8000종이나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과 나아가 번성에 성공한 것은 난초의 영리함 때문이다. 난초는 다른 꽃처럼 꿀이나 꽃가루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지 않았다. 암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꿀벌 난초는 수벌을 유인해 교미 행위를 하도록 하면서 꽃가루받이를 통해 자손을 퍼뜨렸다. 암벌의 페로몬과 똑같은 향을 발산하는 난초도 있고, 벌의 천적처럼 보이게 해서 수벌이 공격하도록 만드는 난초까지 있다. “난초가 곤충과 함께 지구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식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튤립에는 경제학적 서사도 숨어 있다. 튀르키예가 원산지인 튤립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속도로 늘다 보니 가격도 천정부지로 솟았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튤립 품종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대저택 한 채 값에 맞먹을 정도였다. 워낙 귀하다 보니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매수 권리를 사고파는 선물 거래와 옵션까지 등장했다. 어느 순간 거품이 붕괴되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실상 현재 자본주의 경제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거품 경제 현상의 최초 사례였다.
책에는 이밖에도 동백꽃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의 대표 이미지가 된 사연과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의 지독한 장미 사랑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꽃들의 생태학적 특징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또한 접시꽃, 무궁화, 작약, 원추리처럼 우리 역사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꽃들도 다수 포함됐다. 책 뒷부분에는 식물학, 원예학 관련 용어 해설과 찾아보기 등이 있어 꽃 공부를 시작하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듯하다. 우리가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통해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꽃의 아름다움이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과 낙원의 이미지를 닮아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우주와 자연의 섭리를 일깨워 주고 험난한 세상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해 준다”고 말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