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유가족에 위로·회복의 여행을 선물하다

입력 2025-05-29 03:03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GKL사회공헌재단과 함께 기획한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지난 25일 전남 순천 낙안읍성을 돌아보고 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며 생명을 나눈 유가족들이 5월의 끝자락, 초록빛 자연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아픔과 감사를 나눴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는 GKL사회공헌재단(이사장 이재경)과 함께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33명을 초청해 전남 순천과 여수 지역을 여행하며 치유와 회복을 돕는 ‘우리가족 행복여행’을 진행했다.

생후 5개월 아들 이승준군을 떠나보낸 이기원(48) 윤정원(44)씨 부부에게 이번 여행은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여정 마지막 날인 25일이 결혼기념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 윤씨는 “5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생명을 살리고 떠난 아이가 누구보다 고귀한 삶을 살았다고 믿는다”면서 “이번 여행은 하늘나라에 있는 승준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날 순천 낙안읍성과 순천만국가정원 등 고요한 자연 속을 걸으며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감출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2008년 남편 김유신씨의 뇌사 장기기증을 결정했던 정선자(62)씨에게 순천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 깃든 지역이다. 자매들과 함께 이번 여행에 참여한 정씨는 “남편이 경찰로 근무했던 그 시절, 자주 찾던 순천이었다”면서 “이번 여행은 그리운 남편과 함께 걷는 시간 같았다”고 말했다.

이번 여정엔 유가족의 마음을 열기 위해 테라리움 만들기, 힐링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장기기증의 필요성을 알리는 캠페인도 펼쳤다. 여행 둘째날 펼쳐진 토크콘서트에는 도너패밀리와 장기이식인들이 함께 참여했다. 2018년 심장이식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오수진 기상캐스터는 이날 사회를 맡아 “기증인의 용기가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2009년 첫째 아들 문준호군을 장기기증으로 떠나보낸 문병철(50)씨도 이날 무대에 올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를 보낸 후 가족 여행은커녕 웃을 여유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함께 웃고, 말하고, 울 수 있었어요. 정말 오래 기억될 겁니다.”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치유여행이 마련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랑의장기기증본부 관계자는 “그동안 일일 나들이나 소풍 등은 있었지만 올해 GKL과 함께해 치유여행이 처음 가능했다”며 “이번 여행은 유가족들에게 삶의 쉼표가 되고 다시 걸어갈 힘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