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정치 분야를 끝으로 세 차례의 대선 후보 TV토론이 마무리됐다. TV토론은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으면서 그들의 능력을 비교평가하고 공약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번 세 차례 토론은 그런 계기는 거의 제공하지 못한 채 비방과 사생활 들추기, 말꼬리 잡기만 넘친 네거티브 경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토론을 보고 후보들에게 매료돼 투표할 마음이 생겨나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 혐오만 커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마지막 토론에선 저급한 한국 정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 신체와 관련한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이 당황하는데도 중단하지 않았고, 거듭 비슷한 표현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아이들도 보는 지상파 TV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귀가 의심될 정도의 저속한 표현이었다. 시민단체들이 이 후보 발언을 ‘언어 성폭력’ ‘정서적 아동학대’로 규정해 검경에 고발한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발언이라는 인식에서다.
올해 40세인 이 후보가 대선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국민들 사이에선 낡아빠진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젊은 감각으로 우리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오직 표를 위해 정치를 더 퇴행시키고 선거와 토론을 진흙탕 싸움장으로 변질시켰으니 실망한 국민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토론 이튿날 자신의 발언을 사과하면서도 “발언 원본을 순화해 표현했고 더 어떻게 순화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변명하는 모습도 젊은 정치인에게 기대되는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후보 발언 논란 외에도 이번 TV토론은 여러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후보들이 자신이 준비한 것만 일방적으로 발언하고 상대에겐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깊이 있는 토론이 이뤄질 수 없었다. 또 정책 경쟁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얘기는 듣기 어려웠던 반면, 상대의 과거 의혹과 잘못을 들추는 데 급급했다. 그것도 국민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철 지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상대 말을 자르거나, 대놓고 면박을 주는 등 품격 없는 장면도 많았다. 우리 정치가 매일같이 치고받고 싸우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중요한 대선 토론조차 그 정도로밖에 진행되지 못한 것이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와 수준 낮은 토론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가 앞으로도 나아질 리 만무하다.